이젠 민생이다 <3> 취업난 청춘들
“오래 준비한다고 유리한 시험이 절대 아니에요. 친구들 취업하는 것보다 더 빨리 합격하고 싶어요.”(정가윤)
스펙 다 쌓아도 취업 장담 못해
일자리 대란이 부른 ‘공시 열풍’
9급 4120명 뽑는데 22만 명 몰려
‘안정된 삶만 추구’ 비판하지만
중기 초임 180만원 현실에 절망
“창업도 일부 명문대 출신만 성공
정부, 실태 제대로 알고 정책 펴야”
“사촌형이 ‘고향으로 와 가게에서 같이 일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매번 아깝게 떨어지니까 ‘한 번만 더’를 반복하게 됩니다. 공시생이 된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취업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청년들은 노량진으로 몰려간다. 재수생의 성지였던 노량진은 이미 공시생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25만 명에 이르는 전체 공시생 중 5만 명이 노량진에 터잡은 채 힘겹게 합격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의 지방직 공무원 7급 공채 경쟁률은 122대 1에 달했다. 4월 치러진 국가직 9급 공채(4120명)에는 22만1853명이라는 역대 최대의 지원자가 응시했다.
노량진의 5㎡(1.5평)짜리 고시원에서 장지은(가명·27)씨가 말을 이어갔다. 어렵게 청해 들어간 방은 책상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찰 정도로 좁았다. 장씨는 “불쌍하게 볼 것까진 없다”고 웃었다. 수도권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장씨는 2015년 2월 졸업한 뒤 2년간 취업 준비를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노량진행을 택했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 5개월. 노량진에 있는 다른 공시생들에 비하면 ‘새내기급’이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오후 3시까지는 학원에서, 그 이후에는 작은 방에 머물며 시험을 준비한다. 식사는 공동 주방이나 학원 근처에서 해결한다.
장씨는 졸업반 때 80개 기업에 지원했지만 78개 기업의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듬해엔 면접을 본 곳이 5개 기업으로 늘었지만 취업에는 실패했다. “‘실패는 훈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2년을 허비하면 그냥 패배자가 되는 거예요. 가족과 대화도 끊기고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짐을 싸서 노량진으로 왔어요.”
문종환(가명·31)씨가 공시를 선택한 이유도 비슷하다. “학점·토익·자격증·공모전·인턴 등 투자도 모자라 외모관리까지 해도 대기업 합격을 보장할 순 없어요. 그럴 바에는 나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게 가장 속 편한 선택입니다.”
지방대 국문과 출신의 공진아(가명·29)씨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소규모 광고대행사에 합격해 월급 150만원을 받고 하루에 17시간씩 일했는데 수습기간이 끝나니까 나가라고 하더군요. 이게 지금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등 정부 일각에서 권장했던 창업이니 해외취업이니 하는 것들은 그야말로 별세계 얘기다. 창업 얘기를 꺼내자 공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창업에 성공하는 이들도 결국은 능력 있고, 고급 정보 습득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일부 명문대 출신들뿐입니다. 지방에서는 창업이라고 하면 모두 식당 창업을 떠올리는 게 현실입니다. 제발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고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문제 전문가인 오찬호 박사는 “청년층 불안의 강도가 커질수록 안정적이고 검증된 직업군에 대한 맹목적 선호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공시 탈락자들의 자괴감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만큼 청년 취업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