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민생이다 <2> 치킨공화국의 그늘
서울 장안동의 가게를 찾아온 친구들은 나를 ‘사장님’이라며 부러워한다. 100㎡(약 30평) 남짓한 프랜차이즈 치킨가게의 간판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맥주 한 잔 마시기 좋게 꾸며진 테라스와 유명 연예인의 광고 사진을 둘러보며 월급쟁이 친구들이 특히 부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말한다.
자영업 뛰어든 대기업 출신 30대
AI 급속 확산되자 주문 20% 감소
생활비 한 푼 집에 못 가져갈 때도
이전엔 호프집 8개월 빚 5000만원
학교 주변 치킨집 김영란법 직격탄
자영업 연매출 5000만원 미만 57%
이유가 있다. 가게 문만 열어 놓아도 매달 약 2000만원이 꼬박꼬박 빠져나간다. 임차료와 관리비 280만원, 인건비 600만원, 투자비용으로 빌린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가 매달 130만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는 물품비가 한 달에 약 1000만원이다. 생활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달도 있다. 벌어서 비용으로 다 나가는 셈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달 다른 점주들을 만났다. 한 점주는 “본사에 줄 물품비를 대느라 고금리지만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빌렸다”고 했다. 특히 학교 주변의 치킨집들은 이른바 ‘김영란법’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교무실·교실로 배달해 달라던 학부모들의 단체 주문이 뚝 끊겼기 때문이란다.
치킨집을 열기 전, 지난해 호프집 장사를 시작했다. 젊을 때 10년만 고생해 아이들이 크기 전에 자리를 잡아 보자고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8개월 장사 끝에 남은 건 빚 5000만원. 여름에만 좀 장사가 될 뿐 빈 테이블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빚도 갚고 다시 일어서자며 시작한 것이 치킨집이었다.
올해 처음 치킨집을 열었을 때 아내는 가게에 나와 재료를 나르며 도왔다. 아직 유치원생인 두 아들은 시급을 주고 남의 손에 맡겼다. 대기업 공채에 합격해 직장생활만 했던 나는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대신 16~20㎏씩 나가는 생닭을 옮기고 닭을 튀겼다. 근처 배달은 직접 뛰었다. 아내도 나도 허리와 손목의 통증을 밤새 숨죽이며 앓았다.
요즘 오랜만에 이력서를 만지작거린다. 낮시간대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찾아보면서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주문은 지난달보다 20% 뚝 떨어졌다. 불안감에 휴대전화로 AI 뉴스를 매일 찾아본다. 내년부터는 한 명 있던 직원도 그만두게 하고 아르바이트생만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힘들더라도 일단 내가 더 뛰어볼 도리밖에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성공해 책을 내겠다는 내 꿈이 바닥나기 전에 긴 터널의 끝이 보였으면 한다.
고용원 없이 장사를 꾸려 나가는 영세 자영업자 수도 늘었다. 지난 3분기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08만8000명으로 지난해 3분기(403만7000명)보다 1.3% 증가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매출은 줄어드는데 대출 금리가 오르다 보니 소상공인들은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며 “결국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극빈층으로 추락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글=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