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듯 치솟던 서울 전셋값이 진정되고 있다. 전세 물건이 부족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세난이 완화되는 모습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서울 주택 전셋값이 1.83% 올랐다. 지난해(7.25%)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셋값이 하락세(-7.80%)를 보인 2004년 이후 2012년(11월까지 0.24%)에 이어 두 번째로 상승률이 낮다. 민간기관이 내놓는 수치도 비슷하다. 올 들어서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특히 11월부터 크게 둔화됐다. KB국민은행 조사 결과 서울 전셋값은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주간 기준 변동률이 0.06~0.1% 수준이었으나 11월 들어선 0.03%대로 낮아졌다.
성북·마포구 전셋값 둔화 두드러져
입주량 늘며 수천만원 떨어진 곳도…집값 하락, 금리 상승 등의 영향도
아현동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형은 지난 9월보다 5000만원 내린 6억원으로 떨어졌다.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 59㎡형도 3~4개월 새 3000만원 이상 내렸다. 아현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물건은 꾸준히 나오는데 전세를 알아보러 오는 사람도, 전화문의도 별로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까지 연평균 6~7%의 상승률을 보이던 서울 전셋값에 힘이 빠진 데는 전셋집 공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3000여 가구로 지난해보다 11.7% 증가했다. 경기도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올해만 8만7000여 가구로 최근 3년 간(2013~2015년) 연평균 5만7000여 가구보다 50% 넘게 늘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세난에 허덕이던 수요가 싼 전세를 찾아 경기도 택지지구 등으로 옮겨간 것이 완충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위례신도시와 하남 미사지구에서 아파트 입주가 잇따르자 인접해 있는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 전셋값이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올해 주춤했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31.2%로 지난 3월(38.1%)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물량이 많아 월세 수익률이 떨어지자 집주인들이 다시 전세로 임대를 놓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전환율은 10월 말 기준으로 연 5.7%다. 2011년 8.6%에 달했지만 3%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올 들어 둔화한 집값 상승세도 전셋값 오름세를 짓누르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를 땐 집주인들이 집값 상승분을 전셋값에 반영해 보증금을 올린다. 가격 상승폭이 줄어들면 전셋값을 많이 올리기 부담스러워진다. 11월 말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 대비 전셋값 평균 비율은 73.3%로 2년 전에 비해 8%포인트가량 올랐다. 집값이 오르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오른 결과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세입자 입장에서 집값 하락에 대비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으려면 집값보다 일정 폭 이상 저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인 가운데 기존 세입자들이 시장 눈치를 보며 기존 전셋집에 계속 눌러앉아 있는 것도 전셋값이 들썩이지 못하는 이유다. 전세 재계약은 통상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이뤄진다. 이 때문에 올해 전세 거래량도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10만4107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9181가구보다 4.6% 감소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품 거래가 늘면 자연히 가격이 오르듯 전세 거래가 줄면 가격도 안정세를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세 거래량도 줄어
일부 지역에선 대규모 입주에 따른 공급으로 ‘역전세난’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전세난은 전셋값이 갑자기 떨어져 집주인이 계약기간 만료 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내년엔 전세시장의 판도가 바뀌어 역전세난과 집값 하락 등으로 전셋값을 되돌려 받기 힘든 ‘깡통전세’가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은 주택 입주량이 멸실 가구를 고려할 때 과잉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국지적인 상승세를 보이겠지만, 경기도 입주량이 서울 전세 수요를 분산시켜주면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