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튼콜’은 중간중간 허술한 점이 있지만, 연극 무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유쾌한 웃음이 더해진 영화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라면.
- “시나리오 초고를 받은 건 3년 전이었다. 연극 무대를 그린 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영상 언어로 쉽게 구현될 것 같지 않아 당시에는 거절했었다. 그러다 1년 전, 새롭게 고친 시나리오를 전달받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작은 규모의 영화였으나 흔쾌히 캐스팅 제안을 수락했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 어떤 조건이었나.
- “촬영 시작 전에 ‘연습실을 하나 마련해 달라’고 했다. ‘커튼콜’은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아낸 극이잖나. 그렇기에 영화 속 연극인 ‘햄릿’을 배우들이 숙지할 필요가 있었다. 한 달 동안 우리끼리 연극 연습하듯 함께했다. 모두 연극 배우 출신이라 정말 즐거웠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장면들을 만들어 나갔다. 보통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드문 일이다.”
- 전무송·박철민 등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쟁쟁하다. 촬영 현장 분위기가 마치 실제로 공연을 올리는 것 같았겠다.
- “한국 연극사의 상징과도 같은 전무송 선생님께서도 이 영화에 큰 애정을 갖고 함께해 주셨다. (박)철민 형과 연기 호흡을 맞춘 것은 처음이지만, 과거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부터 워낙 친했다. 그때 우리는 다른 극단에 몸담고 있었지만, (배우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였다. 촬영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소주 한잔하며 나눈 많은 이야기가 소중하다.”
- 갑자기 무대에서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리는 등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극 중에서 공연하는 연극 ‘햄릿’ 내용이 ‘산으로 간다’는 게 이 영화의 골자다. 연극 무대에 섰던 예전 기억과 겹치는 점은 없었나.
- “극단 학전에 소속돼 있을 때, 주요 작품 중 하나가 ‘지하철 1호선’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나는 ‘신문 보는 남자’ 역을 맡았는데, 공연 도중에 연기하다 말고 정말 신문 기사를 읽어 버렸다! 극의 설정상 지하철이 멈추면 내려야 했는데, (신문 기사를 읽느라) 못 내리고 말았다. 애드리브로 ‘잠깐만요!’ 소리 지르고 문을 낑낑 여는 척하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웃음). ‘커튼콜’을 촬영하며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런 실수가 일어난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연극 무대만큼 배우에게 자유로운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TV 드라마가 작가의 예술이고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정말 배우의 예술이다.”
- 배우로서 가장 공감한 장면은.
- “삼류 에로 극단의 배우들, 비루한 삶에 지친 이들은 ‘내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한 정서가 이 영화의 전반부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데, 그 시퀀스가 참 좋다. 마치 예쁜 목도리를 다 함께 한 코 한 코 뜨며 완성해 가는 듯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달까. 그렇게 꿈꿀 때 삶은 비로소 가치 있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또 하나 꼽는다면, 민기가 무대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말씀드리지 않겠다.”
- 지금까지 수많은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그러나 배우 장현성이 빛났던 순간은 몸서리치게 악하거나 아주 이기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였다. 대표적인 예로, ‘시그널’의 악질 형사 김범주를 연기하며 얄밉게 립밤 바르던 모습은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회자될 정도다.
- “그런 것 같긴 하다(웃음). 어떤 역할이든 모두 애정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커튼콜’의 민기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대작 영화들 틈에서 참신한 소재로 승부하는 작은 영화라서다. 내가 연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캐릭터를 찾아낸 기쁨도 있고.”
- -최근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연극하던 시절, 방문 판매원으로 일하며 코털깎이도 팔아 봤다’고 말한 인터뷰가 화제를 모았다. 그 길고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 “‘버틴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연극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다.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언제나 술 사 주는 선배들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먼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이 장면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매일같이 생각했다. 그런 구체적인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5년이 되고 10년이 흐른 것이다.”
- 이토록 열정을 가지고 연기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가 있나.
- “사실 나는 학창 시절에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만 고등학생 때 ‘유한한 삶’에 대해 남들보다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삶은 유한한데,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런 것이 내게는 매우 큰 공포였다.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고민에 대한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직업이 바로 ‘예술가’였다. 폼 나더라(웃음). 그래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 따라 얼떨결에 연극과(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故 박광정 선배를 따라 극단 학전에 들어갔고. 그렇게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 긴 연기 인생 중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
- “안판석 감독님과 ‘아내의 자격’(2012, JTBC)을 작업할 때였다. 보통 TV 드라마는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할 때가 많은데, 안 감독님은 실제 촬영을 진행하는 시간보다 배우들과 논의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어떻게 하면 이 장면을 잘 구현해 낼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연기가 아주 밀도 있게 나왔다.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베테랑 배우 장현성이 꼽는 ‘배우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 “쑥스러워서 후배들에게 조언도 잘 못하는데(웃음). 어느 책에서 ‘배우는 가장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 쓴 것을 보고 깊이 공감한 적 있다. 사실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려면 ‘굳은살’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나는 그 정도로 아프지 않아,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우리는 점점 두꺼운 갑옷을 입는다. 하지만 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감수성만큼은 ‘다치기 쉬운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충격을 받아 새로운 감정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50~60대의 목표라면.
- “그저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 그런 배우로 남고 싶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