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불찰로 국가 혼란 송구…헌재심판 담담히 대응할 것”

중앙일보

입력 2016.12.10 01:54

수정 2016.12.1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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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오후 5시에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부처 장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직무정지가 임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식 국무회의를 열지 않고 간담회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가 모두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되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요구하는 ‘즉각 퇴진’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의 탄핵안엔 법리상 무리한 내용이 많다”며 “헌재 결정까지 수개월이 남아 있는 만큼 앞으로 분위기가 좀 차분해지면 과연 탄핵이 타당하냐는 얘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청와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등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또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장관들께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비상한 각오로 합심해 국정 공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시국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이라며 “특히 민생안정에는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각별하게 챙겨봐 달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최근의 일들로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국정과제들까지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 성장의 불씨까지 꺼뜨린다면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도 함께 꺾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 총리·장관과 간담회
즉각 퇴진 안 한다는 입장 재확인
대통령·장관들 인사하며 눈물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괴롭고 죄송스럽다. 공직자들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와 장관들께서 잘 독려해 달라”며 공개발언을 마쳤다. 박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고 어조는 가라앉아 있었다. 발언 도중 간간이 목소리가 잦아들기도 했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장관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개별적으로 인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장관들은 박 대통령에게 “잘못 보좌해서 죄송하다”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 등의 말을 건넸고, 박 대통령은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7시3분 국회에서 보낸 ‘탄핵소추의결서’가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 접수되면서 박 대통령의 직무는 즉각 정지됐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 표결 과정을 관저에서 TV로 지켜봤다. 내심 이변을 기대했던 참모들은 예상보다 탄핵 찬성표가 많이 나오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관저에 유폐된 신세가 될 전망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론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기간 중 청와대 바깥 나들이를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에 대비해 변호인단과 함께 법적 대응 논리를 세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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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하기 직전에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조대환(사법연수원 13기) 변호사를 임명했다. 조 변호사는 제주지검 차장 출신으로 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과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