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꿴 만남, 그 끝은 비극이었다…최태민부터 최순실까지 이어진 42년 악연

중앙일보

입력 2016.12.10 01:07

수정 2016.12.1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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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가결 - 그때 그 장면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핵됐다. 직무정지 전 대통령직을 수행한 기간은 1384일. 박 대통령을 탄핵에까지 이르게 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시작은 1974년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최태민은 육영수 전 영부인의 사망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고 있던 당시 영애 박근혜에게 위로편지를 보낸 뒤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이후 둘은 지난 1979년 ‘새마음운동’을 같이했고, 이 인연은 최태민의 딸 최순실, 사위 정윤회, 손녀 정유라에까지 이어졌다. 최태민이 사망한 뒤 박근혜 옆에 남은 이는 최순실과 정윤회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40여 년 인연의 끝은 비극이었다. 박 대통령은 탄핵되고, 최순실은 차가운 감옥에 있다. 국정 농단으로 끝난 이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 역사에 남긴다. 중앙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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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9월 2일
박 대통령·최순실 인연의 시작은 최태민. 완장 두른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과 큰영애 박근혜양.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딸을 염려했을까? 대한구국선교단을 방문, 최태민을 만난 자리에 같이한 근혜양.

1979년
‘제1회 새마음제전’ 개회식에 참석한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 최순실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후 광화문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서 주술 의혹 받은 ‘오방낭’ 복주머니 개봉.

2월 25일
33년 만에 청와대 재 입성.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허태열 비서실장과 함께. 최순실은 보이지 않았다.

2014년 8월 27일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그들은 늘 있었다. 뮤지컬 ‘원데이’ 관람 뒤 인사말 하는 박 대통령을 지켜보는 차은택.

11월 26일
박 대통령, 서울올림픽공원 늘품체조 시연행사. 늘품체조를 차은택이 기획했다는 것은 2년 뒤 밝혀진다.

12월 1일
집권 2년차 박 대통령, 정윤회 등 비선실세 국정 농단 보도에 “청와대 문건 외부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

12월 4일
‘정윤회 문건’ 작성자 박관천 경정, “권력 서열 최순실1위, 정윤회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

12월 7일
여당 지도부와의 점심 회동에서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

12월 10일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 서울중앙지검 출석하며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

12월 14일
이재만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 서울중앙지검 출석… 결론은 ‘정윤회와 비서관 등의 비밀회동 없었다’.

2016년 9월 20일
문건 논란 뒤 2년이 안 된 이날 정윤회 전 부인 최순실이 비선실세라는 보도. 청와대는 이에 대해 “추측성 기사”.

10월 19일
최순실 딸 정유라 특혜입학 의혹에 대해 이대 교수·학생들 총장 해임 촉구 집회. 결국 최경희 총장 사임.

10월 20일
최순실 의혹은 갈수록 불어났다. 박 대통령, “어느 누구라도 엄정하게 처벌”이라며 첫 공식 입장 표명.

10월 24일
박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임기 내 개헌”. 야당, ‘#그런데 비선실세들은?’이란 문구 들고 피켓시위.

10월 24일
“최씨, 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 받았다” JTBC, 청와대 대외비 문서 저장된 태블릿PC 공개. 국정 농단 첫 물증.

10월 25일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최순실 과거 어려울 때 도와 준 인연” “연설문·홍보물 표현에서 도움받았다”.

10월 26일
검찰,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 9곳 압수수색. ‘프라다’ 등 명품 구두로 가득한 최순실 집 신발장도 공개돼.

10월 27일
최순실의 국정 개입과 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검찰, 이날 입국한 고영태 참고인으로 조사.

10월 29일
최순실 국정 농단이 본격적으로 실체 드러나자 첫 촛불 집회 열려. 이날 인원은 3만여 명(경찰 추산 1만2000명).

10월 31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 중심 최순실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

11월 2일
박 대통령, 정면돌파 시도. 신임 총리에 김병준 국민대 교수·경제부총리에 임종룡 금융위원장 전격 지명.

11월 3일
최순실이 구속된 이날 박 대통령,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다는 평가 속 한광옥 비서실장·허원제 정무수석 임명.

11월 4일
대국민 담화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 “검찰 조사·특검 수용… 모두 제 잘못”… 지지율 5%.

11월 5일
2차 촛불집회, 1차 때보다 6배가 넘는 20만 명이 모였다. 청와대와의 거리도 1차 때보다 500m 줄인 1300m.

11월 8일
박 대통령, 국회 전격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회동…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주면 수용하겠다’.

11월 11일
최순실 독일 생활 처음 공개… 지난 6월 23일 ‘비덱 타우누스 호텔’ 매입 후 가족·지인들과 개업 파티.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는 100만 명 육박. 이때부터 참가자들 청와대 쪽으로 본격 전진 시도. 청와대까지 거리는 900m.

11월 15일
박 대통령, 검찰 대면조사 거부.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 검찰 조사 연기 요청. 16일에는 “대면조사 불가능”.

11월 20일
검찰, 비선 국정 농단 중간수사 결과 발표… 최순실·안종범·정호성 일괄기소와 함께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

11월 21일
직권남용·사기·횡령 혐의로 최순실 조카 장시호, 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김종 전 문체부 차관 구속.

11월 26일
눈과 비가 뒤섞인 궂은 날씨에도 5차 촛불집회에는 서울에만 150여만 명, 지방 40만 명 등 190여만 명 집결.

11월 27일
박 대통령의 주사제 대리처방 의혹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아.

11월 29일
박 대통령, 3차 대국민 담화 “대통령 임기 단축 포함 진퇴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 야당, 탄핵 당론 결정.

12월 1일
박영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규명 위한 특별검사’ 임명장 황교안 총리가 수여.

12월 3일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이날 서울 170만 명 등 전국 230만 명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청와대 100m 앞까지 접근.

12월 6일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위한 국조특위 1차 청문회, 대기업 총수 9명 출석.

12월 7일
2차 청문회.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출석. 장시호는 지각 출석. ‘공항장애’라는 최순실은 나오지 않았다.

12월 9일
탄핵안 가결, 찬성 234표·반대 56표·기권 2표·무효 7표… 직무 정지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국민께 송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