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42년째 우정을 나누고 있는 62세 동갑내기다. 가수 전인권과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김천기.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을 이어 준 건 음악이었다. 김 교수는 전인권도 인정하는 기타 연주와 노래 실력자다. 록, 클래식 등에 빠져 대학 입시에서 재수하고, 한양대 의대 1학년 땐 낙제도 했다. 1980년 의대를 졸업하고 결혼 뒤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의대 등을 거쳐 2009년 하버드대 의대 핵의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 사이 전인권이 리드보컬인 80년대 인기 록그룹 들국화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히트시켰다.
음악으로 이어진 42년 우정
전 “힘들 때도 곁에 있어준 친구”
김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져”
91년부터 콘서트 단골 게스트로
그 후 두 사람은 전인권의 삼청동 집 등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했다. 전인권은 “천기는 잔잔한 미성(美聲)으로 노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다. 내가 함께 그룹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수락했다면 세계무대에도 진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내기 의사와 신인 가수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김 교수는 “들국화의 인기, 그리고 해체 소식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떠올렸다. 91년,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김 교수는 전인권의 콘서트장을 찾았다. “우리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먹함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둘 다 외모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십분쯤 대화를 나눈 뒤 이렇게 말했죠. ‘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전인권은 90년대 굴곡진 삶을 살았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멀어져갔다. 하지만 둘 사이는 달랐다. 전인권은 “천기가 변호사 선임비로 쓰라며 내 아내를 통해 500만원을 건넸다”고 기억했다. 김 교수는 “타향살이에서 향수를 느낄 때나 인권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전인권의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최근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자신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 화제가 된 전인권은 여전히 김 교수와의 밴드 결성을 꿈꾼다고 했다. 둘은 “밴드명에 누구 이름이 먼저 들어갈지 가위바위보로 정하겠다”며 웃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