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으면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께 비난받을까 두려워요. 솔직히 나를 위해 공부하는 건지, 주변의 시선 때문에 공부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이모군·고1)
고교생 636명 그릿 테스트 해보니
특목고 78, 자사고 74, 일반고 45점
그릿 점수와 학업성적 상관관계 커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 강도나 대처 방법은 꽤 다르다. 진로에 대한 태도도 차이 난다. 박군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며 “내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조언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이군은 “부모님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정한 건지, 부모님 뜻대로 정한 건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릿은 성공·성취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열정·근성을 뜻한다. 기존엔 성공·성취의 핵심 요인으로 뛰어난 지능을 꼽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능이 높은 학생이 중위권을 맴돌고, 평범한 지능의 학생이 최상위권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재능, 가정환경,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 외모, 건강 등 다양한 변수들과 학업 성취도의 관계를 놓고 연구가 이어졌지만 뚜렷한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키워드가 바로 그릿이다. 201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앤절라 더크워스 교수는 성공과 성취의 요인이 지능이 아닌 그릿임을 밝혔다. 더크워스 교수는 그릿을 “한계 지점에 다다랐을 때 한 걸음, 두 걸음 더 버티는 인내력”이라고도 설명했다.
이처럼 그릿은 인성과 맞닿아 있다. 학자들이 그릿을 ‘성취 인성 역량’이라 부르는 이유다. 성취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성이란 의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릿은 사회성·도덕성·감성 등 인성의 영역을 종합적으로 통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밀하고 과학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본지는 유웨이중앙교육 그릿연구소와 함께 그릿과 학업성취도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일반고·특목고(국제고)·자사고(전국 단위 모집) 세 곳의 협조를 얻어 재학생 636명을 대상으로 그릿 테스트를 실시했다. ‘나는 좌절을 딛고 도전에 성공한 적 있다’ ‘나는 몇 개월 이상 걸리는 일에 계속 집중하기 어렵다’ 등의 질문 120문항에 5점 척도로 답하는 방식으로 학생별 점수를 산출해 학교별 평균, 학생들의 내신성적 등과 비교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의 그릿 총점은 학교 유형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일반고 학생의 점수 평균은 44.89점에 그쳤다. 반면 특목고는 78.04점, 자사고는 74.25점으로 나타났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모인 특목고·자사고의 그릿 점수가 일반고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기동기력도 학업성취도와 높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고·특목고 학생 중 상위권(내신 1~3등급 )의 유능감(주어진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평균 76.7점인 반면 하위권(7~9등급)은 53.3점에 그쳤다.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은 자율성(스스로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행동) 점수에서도 평균 17.6점, 내재적 동기 점수도 21.1점씩 차이 났다. 성적이 우수한 학교의 학생 사이에도 자신감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에 따라 학업 성취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이 팀장은 “유능감, 자율성, 내재적 동기 등 자기동기력의 전 영역이 내신성적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며 “목적이 분명하고 능동적인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릿은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 회복탄력성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능력을 뜻한다. 실험 결과 일반고 학생의 회복탄력성은 44.17점으로 특목고(77.45점)나 자사고(73.25점) 학생에 비해 30점가량 낮았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스트레스 관리와 역경 극복에서 취약하다는 추정을 입증한 실험 결과”라고 밝혔다.
이 같은 실험 결과에 대해 곽 교수는 “성적 우수자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그릿 지표가 ‘대인관계력’으로 나타난 점, ‘회복탄력성’ 점수가 높은 학생이 내신 성적도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성적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생의 성취를 높이려면 당장 지식을 주입하는 데 급급한 교육 대신 장기적으로 인성을 함양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