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 담화로 탄핵을 자초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는 뭘까. 바로 21세기 민주공화국의 대통령과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청와대에 그가 세팅해 놓은 통치의 무대는 40여 년 전 군주제의 재현이었다. 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왕정의 튼실한 시종장(侍從長)이었다. 청와대 미래수석실에서 핵심 기관장 한 명을 교체하려 했고, 박 대통령의 구두 승인을 미리 받았다. 다른 수석실에서 해당 인사의 경질 이유가 없다고 반대해 큰 논란이 일었다. 김 실장은 그러나 "왕명이란 한번 출납되면 거둬들이는 법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반대를 일축했다. 왕명이 있는 곳에 견제와 소통은 없다. 최순실의 음험한 싹이 터 넝쿨처럼 칭칭 청와대를 휘감을 훌륭한 토양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 열린 사회에
‘왕명의 출납’으로 돌아간 청와대
나홀로 대통령에 '최순실' 싹트고
아버지 시절 군주 문화에 젖어
답답한 국민과 동문서답은 필연
늦었지만 현실 직시 해법 기대를
박 대통령의 사고와 심리는 육영수 여사의 죽음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5년여(1974∼79년) ‘청와대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18년 뒤 자기 정치에 입문했고, 그 18년 뒤 퇴진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열린 지도자로의 성장과 변화는 찾기 어려웠다. 독신의 문제점을 지적받을 때 그는 “나라와 국민과 결혼했다”곤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민들과 함께 지내기에 그는 자기결정력이 부족했고, 성장은 둔했으며, 과거에의 연민은 강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대기업을 동원한 옛날식 발상에 사상누각이 되고 말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코가 꿰인 기업들은 거의 다 부친 박정희 시대에 일어섰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직접 직권남용의 압력을 행사한 혐의의 사례는 포스코와 현대차다. 혹여 아버지 때 키워 줬던 빚이란 보상심리가 잠재된 것은 아니었는지까지 의문에 이르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어릴 적 성공한 아버지를 잃은 딸이 아버지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했을 경우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일수록 현실의 자기 안팎에서 아버지를 재현해 내려는 강박을 갖게 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그 시절 청와대를 완벽히 불러들였던 게 아닐까.
박 대통령이 스스로를 신민(臣民)으로부터 격리시킨 허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든 인물이 왕궁의 집사(執事) 최순실이다. 대통령의 옷가지와 구하기 남사스러운 의약품을 챙겨 주며 영리하게 대통령의 마음을 훔쳤고, 이권으로 교환했다. 박 대통령은 요즘 최순실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최순실’을 만든 건 바로 과거에 살았던 박 대통령 자신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모르니 내놓는 답이 없다. 늦었지만 속히 현실로 돌아와 국민 눈높이를 직시한 해법을 내놓아 주길 기대할 뿐이다.
최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