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 없이 왜 왔나” “왜 대통령 욕하나” 고성 오간 정치 고향

중앙일보

입력 2016.12.02 02:30

수정 2016.12.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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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화재 피해를 입은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2015년 9월 방문 당시(아래 사진)와는 달리 상인들의 손을 잡는 등 직접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공정식]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지난달 30일 큰불로 4지구 상가 점포 679곳이 모두 잿더미가 된 곳이다. 매캐한 냄새가 아직도 가득한 화재 현장에 갑자기 경찰 수백 명이 나타나 시장 전체를 에워쌌다. 폴리스 라인이 화재 현장 부근에 쳐지고, 시장 가운데 길이 통제됐다.

1분쯤 지나자 검은색 승용차 3대가 줄지어 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30분 청와대 경호팀과 함께 시장을 찾아 피해 현장을 돌아보고 갔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청와대 외부 일정에 참석한 것은 지난 10월 27일 부산에서 열린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이후 35일 만이다.

박 대통령, 상인들과 접촉은 안해
예고없는 방문에 시민들 입씨름
상인연합회장과 함께 현장 둘러봐
“가슴 아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경호팀과 함께 검은색 차량을 이용해 4지구 화재 현장에서 10m쯤 떨어진 골목 앞까지 가서 내렸다. 탄핵과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박 대통령은 시장에 도착한 뒤 예전과 달리 상인들의 손을 잡는 등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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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짙은 청색 코트에 회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김영오(63) 서문시장상인연합회장과 15분 정도 화재 진압이 한창인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에도 박 대통령은 피해 상인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따로 듣지도 않았다. 대신 김 회장에게 “가슴이 아픕니다. 피해 상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미리 준비해 간 흰색 쪽지를 전달했다. A4 크기의 이 쪽지에는 ▶대체상가 확보 ▶내년 1월 부가세 신고 혜택 ▶화재보험 보상금 현실화 ▶재난구역 선포 ▶특별교부세 지원 등의 요구 사항이 담겼다. 멀리서 일부 상인들은 박 대통령을 지켜봤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벼운 눈인사만 했다.

2015년 9월 방문 당시. [중앙포토]

일부 상인들은 “(대통령이 시장을 둘러만 보고) 그냥 바로 가버렸다. 이후에 어디로 갔느냐”며 웅성거렸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서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 시민이 “(대통령이 탄핵 논란 와중에) 염치없이 여기에 왜 오느냐. 왜 길만 복잡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때 옆에 있던 60대 남성이 “대통령에게 무슨 욕을 하느냐”고 따졌다. 두 사람의 말싸움은 10여 명의 집단 입씨름으로 번졌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대통령이) 왜 왔느냐”고 부정적 입장에 동조했다. 반면 박 대통령에 우호적인 입장인 사람들은 “북한 김정은에게 가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 어디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맞섰다. 박 대통령의 예고 없는 방문을 계기로 서문시장에서 시민들끼리 갑론을박과 분란이 생겼다.


4지구 상인이라는 정성분(68·여)씨는 “대통령이 왔는데 상인들은 한마디도 말도 못했고 한마디도 못 들었다. 얼굴도 못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은 대통령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경찰과 경호팀이 서문시장을 통제하면서 시장 일대에 차량 정체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문시장 맞은편 동산의료원 앞에서 만난 한 50대 주부는 “눈치도 염치도 없이 찾아와서 복잡하고 시끄럽게만 만들고 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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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대모’(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10여 명은 박 대통령이 떠난 직후 서문시장 안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여론조사는 150% 잘못됐다”고 외쳤다.

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