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쯤 지나자 검은색 승용차 3대가 줄지어 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30분 청와대 경호팀과 함께 시장을 찾아 피해 현장을 돌아보고 갔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청와대 외부 일정에 참석한 것은 지난 10월 27일 부산에서 열린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이후 35일 만이다.
박 대통령, 상인들과 접촉은 안해
예고없는 방문에 시민들 입씨름
상인연합회장과 함께 현장 둘러봐
“가슴 아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박 대통령은 짙은 청색 코트에 회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김영오(63) 서문시장상인연합회장과 15분 정도 화재 진압이 한창인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에도 박 대통령은 피해 상인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따로 듣지도 않았다. 대신 김 회장에게 “가슴이 아픕니다. 피해 상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미리 준비해 간 흰색 쪽지를 전달했다. A4 크기의 이 쪽지에는 ▶대체상가 확보 ▶내년 1월 부가세 신고 혜택 ▶화재보험 보상금 현실화 ▶재난구역 선포 ▶특별교부세 지원 등의 요구 사항이 담겼다. 멀리서 일부 상인들은 박 대통령을 지켜봤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벼운 눈인사만 했다.
4지구 상인이라는 정성분(68·여)씨는 “대통령이 왔는데 상인들은 한마디도 말도 못했고 한마디도 못 들었다. 얼굴도 못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은 대통령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경찰과 경호팀이 서문시장을 통제하면서 시장 일대에 차량 정체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문시장 맞은편 동산의료원 앞에서 만난 한 50대 주부는 “눈치도 염치도 없이 찾아와서 복잡하고 시끄럽게만 만들고 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한민국 박대모’(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10여 명은 박 대통령이 떠난 직후 서문시장 안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여론조사는 150% 잘못됐다”고 외쳤다.
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