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옆 추모관이 1일 불에 탔다. 추모관은 박 전 대통령이 기거하던 생가 옆에 지은 건물이다. 탄핵될 상황에 놓인 박근혜 대통령이 큰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지 2시간 쯤 뒤다. 경찰은 현장에서 방화 혐의로 백모(48·경기도 수원)씨를 붙잡아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 당국과 생가 관계자들이 10여 분 만에 불을 껐다. 하지만 추모관에 있던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모두 불에 탔다. 백씨는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근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수원 사는 40대, 1L 시너통 끼얹어
박정희 동상 훼손 이어 또 불상사
주민 “경제 일으킨 분 생가에…” 분통
백씨는 이날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구미에 도착했다. 생가를 방문한 백씨는 추모관 방명록에 ‘박근혜는 자결하라.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지 말고’라고 쓴 뒤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에서 자신의 직업을 웹사이트 운영자라고 밝혔다. 백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게시물을 다수 올려 뒀다.
백씨는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의 ‘자결’ ‘처단’ ‘죽음’ 등과 관련된 게시물을 5차례 더 올렸다. 지난달 28일에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야 새벽이 온다’는 글도 올렸다. SNS 자기소개에 수도권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박사과정 중퇴)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적어 둔 것도 눈에 띄었다.
사단법인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전병억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이 최근 훼손된 뒤 구미시와 보존회가 생가 주변을 순찰하는 등 방화 등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보존회에 따르면 불을 지른 백씨는 이날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추모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뒤 추모관에서 연기가 났다고 한다. 전 이사장은 “방문객을 일일이 의심할 수는 없다”며 “추모관의 제단과 영정, 벽면에 붙어 있던 사진이 모두 소실됐다”고 말했다. 60대 주민(여)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신 박 전 대통령의 생가에 불을 질러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백씨는 4년 전인 2012년 12월 대구시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에도 불을 지른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백씨는 당시에도 현장에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서 그는 ‘노태우를 단죄하라’ ‘국민의 재산을 훔치고 쿠데타를 일으킨 도적의 똘마니’ ‘부패한 정치인의 표본’ 등의 주장을 담았다. 백씨는 또 2007년에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사적 101호 삼전도비(三田渡碑)에 페인트로 ‘철거’라고 낙서하는 등 훼손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삼전도비는 조선시대 인조를 항복시킨 청나라의 전승비다.
구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