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반도 동남권에 위치한 가상의 ‘한별’ 원전에서 시작된다. 남편과 큰아들을 모두 방사능 사고로 잃은 엄마(김영애 분)는 오늘도 싫다는 둘째아들 재혁(김남길 분)을 원전으로 떠민다. 재혁은 “지은 지 40년이 넘어 너무 노후하다”며 안전성에 의문을 갖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을 내 변변한 일자리라곤 원전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삶의 터전이자 일터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규모 6.1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재앙은 시작된다.
‘연가시’ 박정우 감독 이번엔 방사능
사고로 시작, 인재 겹치며 커져
정치득실 따지다 골든타임도 놓쳐
김명민, 무능력한 대통령역 맡아
박정우 감독은 “4년 전 영화를 시작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며 “다른 영화 같았으면 예지력이 있나보다 하고 ‘자뻑’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만들었는데 현실화되는 것이 두렵다”고 밝혔다.
김명민은 “제가 실제 대통령이라면 그러진 않았을 텐데 재난 현장에 한 번 가보지도 않고 청와대에서 편안하게 연기하려니 송구스러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판도라’의 가장 큰 라이벌로 “저희 상대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아줌마 둘”이라고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사실 현 시국과 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대사들도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데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아 편집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자가 아닌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하다. 때로 신파로 흐르고, 지나치게 훈계조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있음직해서 좀비 소재의 재난 영화 ‘부산행’보다 훨씬 더 무섭다. 원전 폭발과 그로 인한 피해, 대피 행렬 등을 리얼하게 담아낸 영상이 충격적이다. 사고와 무능한 시스템, 부패한 정치인들과 이를 수습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 그리고 스펙터클. 요즘 흥행하는 현실비판 대작영화의 공식을 따른 영화다.
제작진은 강원도 춘천 지역에 5000평 규모의 실물 크기 원자력 발전소 세트를 짓고 촬영했다. 이후 정교한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쳐 원전 격납고가 폭발하는 장면 등 실감나는 영상을 완성했다.
보안 문제로 국내 원전은 취재가 불가능했기에, 한국 원전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필리핀의 바탄 원자력 발전소를 답사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는 “영화적 설정을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그대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전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