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총리 지명권을 국회로 넘겼던 박 대통령은 이번엔 자신의 거취 자체를 국회에다 통째로 넘기는 승부수를 날렸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외형상 각계 원로와 친박계 중진들의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한 모양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 원로 20명은 지난 27일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진 ▶거국중립내각 구성 ▶개헌 등을 골자로 한 정국 수습책을 제시했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핵심들도 28일 비공개 회동에서 “박 대통령에게 질서 있고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달했다.
박 대통령 “임기 단축 등 국회 결정 따라 물러날 것”
야권 “혼란 유도한 꼼수” 2일, 9일 놓고 오늘 결정
비박은 “내달 9일까지 여야 협상…결렬 땐 탄핵”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는 한때 ‘탄핵연대’를 흔들어 놓았다. 야권과 탄핵 추진에 나섰던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당장 동요하는 조짐이 나타났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담화 발표 후 격론을 벌였다. 회의 후 황영철 의원은 “일단 여야는 조속히 대통령 조기 퇴진 협상에 임하고 다음달 9일까지 합의가 안 되면 탄핵을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달 2일 탄핵안 발의를 준비하던 야권은 퇴진 협상을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담화 뒤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를 상대로 혼란을 유도한 대통령의 의도는 결코 관철되지 못할 것”(기동민 원내대변인)이라며 탄핵 추진을 강행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대통령이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건 현재의 (친박계) 여당 지도부와는 어떤 합의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한 퉁치기”라며 “대통령의 꼼수 정치를 규탄하면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계속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의원총회에서 12월 2일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비박계의 입장을 감안해 30일 야 3당 대표들이 모여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비박계에서 상당수가 탄핵 대오에서 이탈하면 야 3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172명)만으론 탄핵정족수(200명)를 채우기가 힘들어진다. 친박계는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글=김정하·강태화 기자 wormhol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