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인증을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활용할 경우 국내 업체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에선 보조금이 전기차 값의 최대 절반에 이른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중국 내 판매가 어렵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선 인증을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은 빠졌다. 중국 정부는 업계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부터 개정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국내 배터리 업체를 키우고 외국 기업 발목을 잡는 정책을 저울질하고 있다”면서도 “개정안대로라면 국내외 업체 뿐 아니라 BYD를 제외한 대다수 중국 업체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그대로 시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준을 한국 업체들이 맞출 수 있는 20억~30억 Wh수준까지 낮춰줄지는 의문이다.
생산능력 기준 40배로 대폭 강화
중국 1위 비야디 외엔 자격 미달
보조금 지급조건 적용 땐 치명타
적자 속 투자 규모 확대 부담 커
당시 LG화학·삼성SDI는 인증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곧바로 재인증을 신청한 가운데 이번 개정안이 나왔다.
수익성도 떨어졌다. 제품 값은 정체 상태인데 핵심 소재인 리튬 값이 지난해부터 급격히 오르고 있다. 업계 트렌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국내 업체가 만드는 배터리 형태는 ‘파우치형’이다. 알루미늄 호일팩에 배터리 내용물을 넣은 식이다. 부피가 작고 자유로운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반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는 그간 배터리를 납품받던 일본 파나소닉과 손잡고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원통형은 만들기 쉽고 값이 싸지만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진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르세데스-벤츠·폴크스바겐도 최근 테슬라와 같은 형태의 전기차 컨셉트를 발표했다.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는 완성차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배터리 업계엔 악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를 앞세워 전기차 시장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화석 에너지 개발을 선호하는 트럼프는 전기차 시장 확대에 부정적이다.
2009년 GM에 배터리 공급을 시작하며 시장에 진출한 LG화학은 올해를 손익분기점 달성 목표로 삼았지만 달성이 어려워졌다. 삼성SDI나 SK이노베이션도 적자를 지속하는 건 마찬가지다. 배터리 업체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에 공장을 짓고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신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중국 인증 문제로 제동이 걸렸지만 배터리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우 연구원은 “단기 수익을 노리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을 다변화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특허권 확보, 전기차 업체와 협력관계 구축 등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