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정권에 휘둘린 문화예술계
이는 예술위 전 간부가 이달 중순 중앙일보에 증언한 내용이다. 그는 “대략 명단은 1500여 명으로 기억된다. 장르별 구분은 있었지만 왜 지원해선 안 되는지, 얼마나 불온한지, 과거 이력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 사유는 전혀 없었다. 명단 중엔 듣도 보도 못한 이도 적지 않았다. 슬쩍 봐도 ‘짜깁기’ 수준의 엉성한 리스트였다”고 전했다.
노무현 집권 뒤 이창동 장관 등
문화부·산하기관장 진보 측 장악
MB 땐 보수 진영으로 다시 물갈이
유인촌 “전 정권 인사 떠나라” 압박
‘문화 융성’이라는 겉 포장과 달리 차은택의 놀이터로 전락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판. 다른 한편에서 진행된 건 음습한 검열과 감시였다. 좌파 성향의 예술가를 추려내 집요하게 불이익을 주는 등 역사의 시계를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리는 조치가 이어졌다. 예술위 전 간부는 “우리도 눈치 백단이다. 잡음 나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다. 솔직히 과거에 누구 밀어 달라는 민원이나 압박이 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누구한테 돈 줘선 안 돼’라며 명단까지 내미는 경우는 이 바닥에서 수십 년 있었지만 처음 봤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퇴행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역사의 반동”이라고 말했다. 사실 예술 지원이 정치권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힘든 구조다. 문학·음악·공연·미술 등 시장경제에서 취약한 기초예술의 경우 정부보조금이 숨통을 열어주곤 했다. 자칫 정부·예술가가 갑을 관계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를 불문율로 삼아왔지만 현실은 따로 움직였다.
편중 지원 문제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2억5000만원에 불과하던 민예총(회원 10만 명) 지원금은 2004년 두 배 이상(5억8000만원)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우파 계열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회원 120만 명) 지원금은 소폭 감소(5억8600만원→5억8000만원)했다.
조희문 영화평론가는 “좌파 진영이 문화를 교두보 삼아 사실상 사상 개조 작업에 나섰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노무현 정부) 당시 편가르기를 했던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와중에 예술 지원 사령탑인 예술위는 외려 흔들렸다. 기존 문예진흥원에서 2005년 자율·참여·현장 등을 기치로 내건 민간기구 형태의 예술위로 변신할 때만 해도 독립성이 보장되리라 기대됐다. 하지만 1기 위원 11명 중 예총 출신은 한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0명이 진보 인사로 꾸려지자 출범 때부터 삐걱거렸다. 곧바로 장르별 나눠먹기 행태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고, 위원 간 소송전까지 벌어지자 초대 김병익 위원장은 중도 사퇴했다. 뒤이어 취임한 2기 김정헌 위원장은 유인촌 장관의 찍어내기에 거칠게 반발했고 2010년엔 ‘한 지붕 두 위원장’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권에 따라 예술계가 휘청거리는 악순환을 끊기란 불가능할까. 이동연 교수는 “문화 관료가 정신 차려야 한다. 부역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막을 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체부 차관을 지냈던 박양우 중앙대 교수는 “정부별로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오직 자기 사람 심기에만 골몰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선 문화산업 육성, 노무현 정부는 스크린쿼터 폐지 등 우파 정책을 펼쳤고 이명박 정부는 문화바우처를 대폭 확대하며 예술인복지법을 시행하는 등 좌클릭했다. 이처럼 진보·보수 정부 간 정책 내용은 차이가 없는데, 대신 반대편 사람을 빼내며 문화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진단이다. 윤평중 교수는 “정경유착·정언유착처럼 행여 ‘정예유착’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예술계 스스로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