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시선 2035] 프로야구와 정유라의 ‘승부 조작’

중앙일보

입력 2016.11.11 00:41

수정 2016.11.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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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1부 기자

2012년 당시 LG 트윈스 투수였던 박현준·김성현이 경기 조작 혐의로 나란히 적발됐다. 브로커들은 이들을 통해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거액의 배당금을 챙겼고, 선수들은 그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이 나던 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두 선수를 영구제명 처리했다. 프로야구 팬들이 입에 거품을 물었고 KBO는 “뼈를 깎겠다”고 다짐했다.

4년이 지났다. 두 선수는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빼곤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야구의 국민적 인기는 여전하다. 뜨거운 인기 뒤에 가려진 조작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경기북부경찰청은 경기 조작에 가담하거나 스포츠 도박에 참여한 전·현직 프로야구 투수와 브로커 등 1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재발 방지’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2012년보다 더 큰 충격은 ‘사기’ 혐의로 입건된 NC 구단 관계자 2명이다. 경기 조작에 나선 선수가 진즉에 범행을 시인했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다른 구단에 이적시켜 10억원을 벌었다.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현실. 개인(선수)의 비리가 사회문제로 확산되는 데는 부도덕한 조력자(브로커), 잘못을 눈감아 주는 무기력한 시스템(구단·KBO)이 존재한다.

‘모든 게 최순실 때문’이라는 말이 국민 유행어가 된 요즘, 프로야구를 바라보면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정유라(20·개명 전 정유연)씨 모녀가 떠오른다. 그들 역시 일종의 ‘승부 조작’ 의혹 중심에 있다. 정씨의 고교 시절부터 이화여대 재학에 이르기까지 입학과 출결, 성적 등 모든 것이 의혹 투성이다. 정씨의 주종목인 승마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적처럼 제도가 바뀌거나 융통성이 적용됐다.


여기엔 정권 실세라는 최씨의 ‘압박’만 있었을까. 이득을 노리고 정씨를 도운 조력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묵인하거나 문제를 찾지 못한 시스템도 존재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대는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일부 교수는 정부 연구비 등의 ‘대가’를 얻었다는 의혹에 대한 감사를 받고 있다.

오래 묵은 각종 문제들이 이제야 사회 도처에서 낱낱이 파헤쳐진다. 그저 ‘모든 게 최순실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운드에 선 투수가 일부러 볼넷을 내주든, 대학 면접관이 실제보다 점수를 부풀려서 주든 ‘시스템’만 잘 작동했다면 일이 커지기 전에 차단될 수 있었다. 시스템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눈을 감거나 부정행위에 동참했다. 이번만큼은 ‘모든 게 ○○○ 때문’이라며 개인 탓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승부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야구 팬, 입시생, 그리고 우리 모두다.

정종훈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