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유세를 하면서 단골로 날린 멘트가 있다. “지금 미국의 다리들은 무너져가고, 공항청사는 제3세계 국가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이어 “클린턴이 공약한 인프라 예산의 두 배를 확보해 낙후한 인프라를 고쳐놓겠다”고 장담했다.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키고 정부의 예산 손실은 최대한 줄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세금 없이 도로·다리 늘린다”
트럼프, 막바지 포퓰리즘 공약
통행료 명목의 꼼수 증세일 뿐
공짜 없어…냉정한 투표 절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국인들은 결국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 내느냐, 나중에 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식 속임수 공약이다. 트럼프의 공약을 액면만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연방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자금을 대는 민간투자자들의 세금을 공제해준다. 투자자들은 공사비의 일부를 초기 계약금 형태로 지불한다. 나머지 비용은 사모 채권시장에서 차입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돈으로 고속도로나 다리, 수도관을 고친 민간투자자들은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미국인들에게 통행료나 수도세를 받게 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액수를 인상해 돈을 벌어간다. 통행료나 수도세 형태로 건설비를 충당하는 점에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건 똑같다. 이로 인해 민간투자자들은 최종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게 된다.
트럼프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은 거액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정부는 민간기업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차입할 수 있고, 이는 비용 우위로 이어진다. 이렇게 인프라 건설에서 경쟁력이 있는 정부를 기업이 이기려면 효율성을 대폭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은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입금의 금리가 높아 수익 압박이 커지면 민간 업체는 비용 충당을 위해 통행료와 사용료를 높게 책정하려 할 공산이 크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이 지불하는 금액은 정부가 세금으로 직접 부과하는 금액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제안한 대로 연방세 공제가 있다면 기업은 사용료를 낮게 책정할 유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연방세 공제 또한 결국 국민이 납부한 세금에서 나가는 돈이란 걸 알아야 한다.
트럼프 공약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정치적인 문제들을 일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은 늘 새로운 도로와 다리, 수도관을 원한다. 그러나 비용은 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금공제 혜택을 통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주 정부는 추가적으로 자금을 차입할 필요가 없고, 연방정부의 채무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납세자들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인식만큼은 허상이다. 트럼프의 인프라 확대 공약이 성사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이는 성실한 납세자들로부터 돈을 받는 월스트리트들의 투자자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던 와이스맨 경제 저널리스트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4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