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째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최순실이라는 여자에게 휘둘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슈.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구유. 당장 그만 둬야지유.”
7일 오후 대전시 중구 태평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강주(62·여)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 때문에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박 대통령을 성토하는 모습이었다. 생선 가게 주인 이용수(47)씨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황제 소환’ 장면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 농단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전국 지지율(11월 첫주 국정수행능력 5%)를 기록한 가운데 충청도 민심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충청도 지지율은 3%로 호남에 이어 둘째로 낮다. 배재대 최호택(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충청도 사람들은 한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 변하는 성향이 있다”며 “이 같은 지지율은 전폭 지지해 준 충청인들의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충청도는 지난 대선에서 영남과 강원에 이어 많은 지지표를 박 대통령에게 던졌다. 박 대통령의 득표율은 충북(56.22%), 충남(56.66%), 세종(51.91%) 순이었다.
충청인들은 학생·직장인·공무원 등 너나 할 것 없이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남대 사학과 3학년 최용석(25)씨는 “국민보다 수준이 낮은 대통령은 존재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이모(51·여)씨는 “일개 강남아줌마에게 놀아나는 대한민국이 한심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2010년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안에 반대해 탄생한 세종시에서도 실망하는 목소리가 크다. 주민 임재긍(61·세종시 한솔동)씨는 “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 세종시를 전폭 지원할 줄 알았는데 무당 비슷한 여자와 국정을 파탄내는 데 골몰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정모(40)씨는 “한진해운 구조조정이 최순실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최악의 국정농단 사례”라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故)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여론도 싸늘하다. 옥천읍에서 쌀 가게를 운영하는 오명자(73·여)씨는 “박 대통령을 찍은 내 손을 끊어내고 싶다니께”라고 말했다.
옥천읍 택시기사 조태홍(64)씨는 “승객들이 ‘학급 반장만도 못한 대통령’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민심이 돌변했다”고 전했다. 반면 육영수 여사 생가가 있는 옥천읍 교동리 주민은 “측근 비리로 곤욕을 치르는 박 대통령이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말했다.
충남에서 보수적인 곳으로 꼽히는 부여군의 상인 이양숙(62·여)씨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청와대를 제멋대로 드나들고 그의 딸은 대학에 부정하게 입학한 걸 보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 대전의 택시기사 김철환(47)씨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박 대통령이 그만두는 것보다 2선으로 물러나고 거국내각 구성 등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충청인들은 충청대망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인기 폭락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충청대망론까지 물건너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임승순 이장은 “충청대망론을 크게 기대했는데 이번 사태가 반 총장에게 손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남대 마정미(정치언론국방학과)교수는 “반기문 총장의 인기가 박 대통령과 동반하락하면서 충청 대망론이 가라앉았다”고 분석했다.
대전·세종·옥천=김방현·신진호·최종권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