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62개 대기업이 내놓은 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800억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해 모금한 액수다. 모금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미르재단 설립에 나선 전경련은 출연금을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갑자기 늘렸다. 재단 설립 사흘 전에 출연금이 적다는 청와대의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청와대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모았다. 기업들이 회삿돈을 사금고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 미르에 회삿돈 출연 관련
“이사회 결정 없었으면 배임 가능성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 재발 막아야”
검찰 “기업 불러 외압 여부 조사 방침”
이 밖에도 최씨와 연루됐거나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이 계속 나오는 상황. 검찰은 재단 설립에 금전적 도움을 준 다른 대기업의 관계자들도 잇따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 모금 과정에서 청와대나 최씨 측의 강요나 압력행사가 있었는지 등을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기업을 바라보는 여론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기업들의 책임을 지적하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열심히 소비자 지갑을 열어서는 정권에 상납했다’거나 ‘한국의 대기업은 정치권에 눈치를 보느라 주주와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급하게 돈을 모금한 정황 등을 볼 때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이 마지못해 기부했더라도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기부 등에 관련됐다면 이번 기회에 기업 스스로 잘못을 털고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기업들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진녕 변호사는 “이사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나 사업계획서나 기업의 사업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범위의 기부라면 횡령·배임 등 형사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구소장(한성대 교수)은 “이번 사건에서 기업이 피해자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주주의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은 분명히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면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사회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장주영·성화선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