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감별사의 세계
1인 가구,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현상에 하루에 밥 두 공기도 채 먹지 않는 쌀 소비 하락시대지만 식품·외식업체들은 ‘밥맛’ 경쟁 중이다. 자연스레 밥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어 소믈리에(sommelier)는 흔히 와인 감별사로 널리 쓰이는데 어원은 중세 유럽에서 식품 보관을 담당하던 직책인 ‘솜(somme)’이다. 이에 음식명 다음에 자연스레 소믈리에가 붙는다. 밥 소믈리에는 단순히 맛과 향의 관능 평가를 통해 쌀 산지·품종을 식별해내는 것을 넘어 ‘쌀→밥’이 되는 전 과정에 필요한 지식 및 기술, 영양학적 가치 등을 갖춘 전문가를 말한다.
밥의 맛·향 평가해 산지·품종 식별
쌀 씻는 방법, 취사 온도까지 관리
일본취반협회서 국제자격증 수여
국내 40~50명 식품업체서 활동
“도시락 시장 급성장해 인기 높아”
국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한 해 5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그만큼 밥맛 경쟁이 치열해진 것으로 소믈리에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냉장 상태로 유통된다. 식다 못해 차가운 밥이다. 이 찬밥을 전자레인지 등에 데웠을 때에도 밥맛을 좋게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밥 소믈리에인 BGF푸드(편의점 CU) 박정운 부장은 “냉장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해지는 도시락에 적합한 쌀 품종을 찾는 일부터 쌀 고유 수분 15~16% 유지 관리, 씻는 방법, 취사 온도 및 시간 등을 분석,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좋은 밥맛을 유지하는 일이 동종 업계의 과제로 떠오르다 보니 밥 소믈리에의 인기도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본 취반협회 자격을 취득한 국내 밥 소믈리에는 40~5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2년부터 (사)세계음식문화연구원에 2개월 과정의 밥 소믈리에 강좌가 개설됐다. 배출 인원은 120여 명이다. 국내외에서 밥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거나 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식품·외식 분야 등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밥 소믈리에 자격시험은=일본 취반협회는 아직 내년도 시험 일정을 공지하지 않은 상태다. 보통 11월 응시 접수, 다음 해 3월 필기·실기시험이 진행된다. 수험료는 교재비 포함 5만1420엔(약 56만원), 합격자는 추가로 인증 등록비 1만280엔(약 11만2000원)을 내야 한다.
[S BOX] 처음 쌀 씻는 물 바로 버려야 밥에 잡내 없어
맛있는 밥 짓기는 좋은 쌀 고르기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농서인 『행포지(杏蒲志)』(1825)에 경기도 이천 쌀이 좋다는 내용이 있고, 브랜드 쌀이 많이 있지만 밥 소믈리에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쌀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정한 지 하루나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햅쌀 중 완전립 비율 90% 이상의 쌀은 일단 합격점이다. 완전립은 쌀알이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은 비율인데 100%에 가까울수록 식감이 뛰어나다. 보관도 중요하다. 최대한 공기 중 산소와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쌀 표면이 산성화돼 향과 맛을 떨어뜨린다. 비닐주머니 등에 한 번에 취사할 양만 따로 담아두는 것도 좋다 . 쌀 씻기에도 비법이 있다. 처음 씻은 물은 바로 버려야 한다. 그래야 밥에 잡내가 배지 않는다. 이후 쌀알에 금이 가지 않도록 두세 번 부드럽게 씻는다. 보통 30분 이상 불리면 쌀알이 물을 흡수한다. 밥 소믈리에인 삼성웰스토리 최서윤(사진) 선임은 “아침에 불릴 시간이 없다면 저녁때 미리 불렸다 채반으로 물을 뺀 후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기밥솥이 취사 완료를 알리면 주걱으로 밥을 열십자(十)로 가른 뒤 각각 저으며 김을 빼준다.
도정한 지 하루나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햅쌀 중 완전립 비율 90% 이상의 쌀은 일단 합격점이다. 완전립은 쌀알이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은 비율인데 100%에 가까울수록 식감이 뛰어나다.
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