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은 섹시한 글래머라면 환장을 한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수십년간 남자로 살아온 바에 따르면 이건 큰 오산이다. 물론 마릴린 먼로나 스칼렛 요한슨을 마다할 남자는 없겠지만 “너의 이상형이 저런 타입이냐?”고 물으면 당장 고개를 끄덕일 한국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대다수 한국 남자들은 왕년의 파멜라 앤더슨이나 근래의 케이트 업튼 같은 전형적인 밤쉘(Bombshell) 타입의 여자들을 좀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절대 다수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한국 남자들은 오히려 “가슴이 너무 크면 부담스럽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가슴의 크기는 단적인 예지만, 그 밖에도 ‘과도한 여성성’을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남자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여기에는 ‘긴 머리, 짙은 화장, 진한 향수 냄새, 공주 의상 혹은 파티 의상’ 등이 모두 포함된다.
(많은 남자들은 인생을 좀 살아 본 뒤에야 서서히 이런 해괴한 도그마에서 빠져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많은 남자들이 ‘화끈한 여자’는 연애용, ‘조신한 여자’는 결혼용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여자와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남자들 중 상당수는 이런 구분이 만약 존재한다면 오히려 반대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화끈하고 적극적인 여자들이야말로 집안 살림과 육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훨씬 좋은 성과를 낸다. 반면 ‘조신하고 얌전한’ 여자들 중 상당수는 삶에 대해 별 의욕도 에너지도 없는 경우가 많아 연애할 때 꽃으로 섬김을 받기에는 적절하지만, 남자들이 기대하는 반려자로서는 별 기여가 없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상한 이분법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타입, 즉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을 요약하면 바로 ‘이해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이해심이란 별 것 아니다. ‘남자처럼 생각하고, 남자의 행동양식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아주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여자친구가 있건 없건,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수많은 남자들은 ‘여자 친구와 보내는 오붓한 시간’이 ‘남자 친구들과 어울려 바보 짓을 하고 노는 것’보다 그리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친과의 뜨거운 밤도 좋지만, 사실 그게 없다고 해도 재미있는 친구들과의 하룻밤 모험은 그런 뜨거운 밤을 1주일 정도 연기해도 좋을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느 정도 균형을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달에 4번의 불금이 있다면 2:2나 3:1(앞의 것이 데이트) 정도의 비율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거라고 생각한다.
압축해서 말하면 많은 남자들은 자신들의 이상형을 ‘사려깊은 여자’라고 표현한다. 반면 여자 쪽에서는 이런 경향을 어느 정도 알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여자들을 ‘방목형’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애든 어른이든, 20대든 40대든, 남자들은 자신들의 목에 개 목걸이가 걸려 있고, 그 줄을 여자친구나 아내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부정하려 한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있어 남자의 ‘철없는 친구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좋게 보아 자신의 경쟁자이며, 나쁘게 보면 악의 상징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곧 죽을 위기에 놓인 안토니오가 친구 바사니오(포샤의 남편)에게 “훌륭한 자네 부인에게도 안부나 전해 주게”라고 하자 바사니오는 비통해 하며 매우 위험한 발언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은 남장을 하고 정체를 감춘 포샤에게 바로 응징당한다.
바사니오: 오. 안토니오. 내 아내는 나에겐 생명보다 소중하네. 하지만 내 생명도, 내 아내도, 전 세계도 나에겐 자네 생명보다 더 소중할 순 없어. 여기에 있는 이 사악한 악마로부터 자네만 구할 수 있다면 난 모든 걸 희생해도 좋아.
포샤: 만일 당신 부인이 옆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달갑지는 않을 걸요.
한발 나아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려깊은 여자’의 두번째 요소는 명쾌한 설명력이다. 많은 경우 남자들을 미치게 하는 여자들은 결코 설명해주지 않는다. ‘나쁜 여자’들은 남자들이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분노의 표출(예를 들면 “화 안 났어. 화 안 났다고!”)을 하고 돌아선 뒤, 여자들끼리 모여 저능아 같은 남자에 대한 규탄대회(예를 들어 “어떻게 그걸 몰라? 왜 몰라? 그걸 일일이 다 가르쳐 줘야 되는거야? 응?”)를 연다.
하지만 사려 깊은 여자들은 어떻게든 이 유인원들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 놓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는 남장을 하고 있는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올란도(이것부터 이미 저능의 상징이다)에게 ‘나를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로잘린드라고 생각하고, 심정을 털어 놔 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올란도를 교육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로잘린드: 로잘린드와 결혼한 뒤 얼마나 살 생각인가요?
올란도: 언제까지나 영원히.
로잘린드: 영원이란 말 대신 하루만이라고 말하세요. 남자란 사랑을 속삭일 때는 꽃피는 시절이다가 결혼하는 순간 엄동설한이 된답니다. (중략) 저는 바바리산 숫비둘기보다 질투심이 강하고, 비 오기 전의 앵무새보다 더 심하게 바가지를 긁을 거에요. 원숭이보다 더 새 것을 밝히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아르테미스 상의 분수처럼 공연히 눈물을 쏟아낼 거예요. 당신이 기분 좋아 날뛸 때를 노려서요. (후략)
올란도: 과연 나의 로잘린드도 그럴까?
로잘린드: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하지만 물론이죠. 틀림없어요.
올란도: 아, 그러나 그녀는 총명하오.
로잘린드: 총명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어요. (후략)
그러니까 사실 남자 다루는 법은 꽤 쉽다. “자, 내가 지금 1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1이 아니고 2란 뜻이야. 알았지? 1은 2야”라고 차근 차근 설명하면 대개는 통한다. “아니 내가 1이라고 말하면 2라고 알아들어야지, 그걸 왜 못 알아들어? 저능아야?” 그렇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대부분의 남자는 침팬지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저능아라는 점만 잊지 않는다면, 당신의 연애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짐작해 보자면 그의 삶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18세 때 26세의 시골 처녀와 결혼해 21세에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셰익스피어는 도저히 이런 삶을 참을 수 없었는지 런던으로 진출해 배우 겸 극작가의 삶을 산다. 꽤 유복한 집안이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단조로운 시골의 삶. 그것도 8세 연상의 처녀와 속도위반(최근 밝혀진 사료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맏딸 수재너는 결혼 6개월만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으로 황급히 결혼한 뒤, 런던으로 간 셰익스피어는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은 거의 느껴 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유언장에도 아내 앤에게는 ‘집에서 두번째로 좋은 침대’를 유산으로 남겼을 뿐이다.
이런 정황을 통해 그의 마음 속을 넘겨 보기는 어렵지 않다. 런던으로 간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와 배우로 쌓은 명성을 통해 수많은 ‘도시 여자’들과 자유로운 연애를 나눴을 것이고, 그 상대는 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내와 다른, ‘말이 통하는 여자’들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개화기 이후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경성이나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신식 남자’들이 도시에서 겪었을 마음 속의 갈등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말이 통하는 여자’, 즉 ‘남자와 동등하게 자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여자’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마음 속 욕망이 결국은 그의 작품 속 남장 여자들, 즉 ‘남자 옷을 입은 사려깊고 현명한 여자들’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에도 많은 남자들이 ‘선머슴아 같은’ 여자 동료나 후배들을 ‘편한 사람들’로 여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화장이나 옷차림에서도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말투도 ‘태양의 후예’의 김지원 처럼 ‘다, 나, 까’를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그런 타입의 여자들 말이다.
난 김유정이 좋던데 기자 yoojunglove@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