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실제 사례로 확인된다.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디자인 관련 잡지사로 지하철 출근하는 이주연(27)씨는 “한 달 평균 시집을 다섯 권 정도 산다. 1시간 남짓한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주로 읽는다”고 했다. 이화여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현대소설 석사를 한 이씨는 예전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직장 취직 후 빨리 읽을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해 시집을 많이 읽게 됐다”고 했다. 특히 “서울 신촌의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 등에서 열리는 시 낭독회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니 시집을 더 사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황인찬 등 아이돌급 시인 등장
『님의 침묵』 등 초판본도 인기
“여성적 대화체, 젊은층에 적중”
“대형 출판사 시집만 잘 팔려” 반론도
이들은 자신들이 시 전문가가 아니어서 요즘 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애써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개인 체험과 연관지어 나름대로 즐긴다 . 독자의 독법도 변하는 모양새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편집장도 “시는 시류를 타지 않는 장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시집 판매가 늘어났지만 과열이나 르네상스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스타 시인이 아닌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도 증쇄를 찍은 경우가 많고, 증쇄 시점도 빨라진 것은 변화”라고 소개했다.
민음사 서효인씨는 “황인찬을 비롯해 유희경·송승언·안희연·서윤후 등 요즘 젊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젊은 시인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시만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SNS나 시 낭독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 독자와 만난다는 얘기다.
황인찬(28) 시인이 대표적이다. 그의 2012년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는 지금까지 1만 부, 지난해 가을 나온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1만1000부가 팔렸다. 황씨는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린다고 얘기된다. 판매도 판매지만 매끄러운 언변에 웬만한 연예인만큼 스타일이 좋아서다. 남성 패션지 ‘GQ KOREA’가 지난해 황씨를 인터뷰해 화보와 함께 게재하기도 했다. 사진·동영상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황인찬’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2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뜬다. 황씨의 시구절, 시집 표지 사진을 올린 게 대부분이다. 가장 인기 있는 구절은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이라는 시의 일부다. 사랑에서까지 오답을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불안이 반영돼 있다.
인스타그램에 시구절 사진을 자주 올린다는 서성미(25)씨는 “시는 감각적이고 짧아서 필사해 올리기 딱 좋다”고 말했다.
시에 대한 관심 증가, 젊은 시인들의 인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요즘 인기 시집은 과거처럼 10만 부, 100만 부 독자가 아니라 수만 명 가량의 강력한 팬덤이 지탱한다. 작품뿐 아니라 시인 캐릭터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SNS 등으로 공유하는 게 하나의 차별적인 문화소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씨는 “젊은 시인들 시에 여성적인 화법이 두드러진 것도 한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권위적이고 예언자적인 ‘∼하리라’ ‘했던가∼’ 같은 표현보다 ‘∼했니’ ‘∼했구나’ 같은 대화체가 시에 많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 표현들이 시의 주 독자층인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진단이다.
글=신준봉·김나한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