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이왕표, 스승 김일 10주기 국제레슬링대회 연다

중앙일보

입력 2016.10.25 01:04

수정 2016.10.25 09:26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마치 태산(泰山)이 앉아있는 느낌이었어요. 눈도 마주치기 힘들 정도였죠.”

이왕표(62)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는 41년 전 스승인 ‘박치기왕’ 김일(사진)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대표는 26일 전남 고흥군 김일기념체육관과 28일 보성군 다향체육관에서 열리는 국제프로레슬링대회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2006년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스승의 10주기를 추모하는 대회다. 노지심·홍상진·조경호와 제임스 라이딘(뉴질랜드)·붓마(미국) 등 국내외 프로레슬러 13명이 출전한다.

내일 고흥군, 28일 보성군서 펼쳐
스승이 준 호랑이 가운 가장 아껴

지난 18일 서울 등촌동 자택에서 만난 이 대표는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한때 ‘나는 표범’으로 불렸던 그는 2013년 담도암 수술을 받고, 지난해 5월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이 대표는 “김일 선생님의 10주기를 계기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분의 고향에서 프로레슬링대회를 열게 됐다”며 “해외 유명 선수들을 직접 섭외하고 대회 스폰서를 구하느라 두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왕표 대표가 스승인 김일로부터 물려받은 레슬링 가운을 입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이 대표는 1975년 김일체육관 1기생으로 레슬링에 입문하면서 스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일은 세계적 프로레슬러인 역도산으로부터 레슬링을 배운 뒤 덩치가 훨씬 큰 외국 선수들을 박치기로 쓰러뜨리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훈련 당시 참을 인(忍)자를 쓰고 ‘참지 못하면 레슬러가 될 수 없다’며 항상 인내심을 강조했어요. ”

이 대표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며 호랑이가 수놓아진 가운을 몸에 걸쳤다. 스승이 2000년 은퇴식에서 그를 정식 후계자로 인정하면서 선물한 레슬링 가운이다. “선수 시절에 직접 입었던 가운을 주시는데, 비로소 스승한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어요.”이 대표는 종합격투기의 인기 등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어온 프로레슬링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은 프로레슬링 시합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김일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레슬링을 다시 반석에 올려놓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는 세 번의 암수술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프로레슬링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스승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이 대표는 “조만간 레슬링 도장을 다시 열고 후배 프로레슬러를 양성하는 등 김일 선생님의 10주기를 프로레슬링 부활의 신호탄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