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입장 차는 ‘지역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 차에서 생긴다. 강남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시 주도로 개발해야 상업시설 변경에 따른 공공기여금을 챙길 수 있는데 거기에 욕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1978년 미국 부유한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로 재산세 인상 상한 정해
압구정 재건축, 삼성동 GBC개발 등
‘세금 내는 만큼 혜택 달라’는 자치구
‘강북도 골고루’ 서울시와 잇단 마찰
서울시와 강남 3구, 중구 등 ‘부자 자치구’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판 ‘프로포지션 13(주민발의 13호)’ 현상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동네 돈이 다른 지역에 쓰이는 건 곤란하다’는 취지가 최근 서울시-자치구 간 갈등과 닮았다는 것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달리 성문법 중심인 우리나라 는 주민 발의로 재산세율 등을 고칠 순 없지만, ‘주민 대표성’을 가진 기초 지자체가 나서서 자기 지역의 개발 이익이 다른 지역에 쓰이는 걸 막는 현상이 잦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옛 한국전력 부지)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의 사용처를 두고 지난해 서울시와 강남구가 갈등을 빚은 일도 한국판 ‘주민발의 13호’의 또 다른 예다. 시는 당초 공공기여금 중 일부를 송파구 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하는 데 쓰려 했지만, 강남구와 주민들은 “강남구 개발에서 나온 돈을 다른 지역에 쓰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서울 서초구도 2012년 강남역 일대 침수 예방을 위해 1300억원의 예산이 드는 ‘강남역~한남대교 간 대심도(大深度)’ 터널 건설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또 다른 수해 지역인 양천구 신월동에 먼저 대심도 터널 공사를 하기로 했다.
서울 중구는 물론 강남·서초·송파구 같은 자치구들은 서울시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지방세인 재산세의 50%를 서울시가 거둔 뒤 이를 25개 자치구에 똑같이 나눠주다 보니 지난해 강남구는 재산세 2184억원 중 1092억원을 서울시에 냈다가 373억원만 돌려받았다. 재산세 수입 2,3위 서초구(1388억원)와 송파구(1232억원)도 마찬가지다. 반면 강북·도봉구는 재산세 487억원을 거둬 243억원을 시에 냈는데 373억원을 받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우리 구의 재정자립도는 25개 자치구 중 2위지만, 정작 실제 사업에 쓸 수 있는 재정력은 22위로 떨어진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강태웅 서울시 행정국장은 “서울이라는 생활권 전체를 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광호 교수는 “재정력 차이가 벌어지는 건 엄연한 현실인 만큼 서울시 등 광역 지자체의 재정력을 우선적으로 강화해 광역 지자체가 기초 지자체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프로포지션(proposition) 13(주민발의 13호)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주민 투표를 통해 재산세의 상한선을 정한 법이다. 부동산 값이 얼마나 오르건 주민이 내야 하는 재산세 인상 폭은 연 2% 내로 묶였다. 증세에 대한 반감과 자신이 낸 세금이 다른 지역 공립학교 지원에 쓰이는 데 대한 거부감이 토대가 됐다. 선진국형 조세 저항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조한대·서준석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