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는…』의 저자는 1975년 초임 외교관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2006~2008년까지 33년간 외교의 단역과 조역으로, 마침내는 외교의 주역으로 이 기간에 일어난 주요 외교협상의 성공과 실패에 참여했다. 저자는 그 긴 세월 내내 스스로 참여 또는 주도했거나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사건들을 꼼꼼히 메모해 뒀다. 그는 그 메모들을 인터넷 정보로 재확인하면서 책을 썼다.
유럽이 만든 인권결의안 초안서
북 지도부 겨냥 뺀 인권 결의안
북이 알고 남 노력 평가한 상태
송민순, 찬성해도 수습 가능 주장
북에 확인하자 한 건 무지몽매
판단착오 인정하고 논쟁 끝내야
여의도가 『빙하는…』를 타고 표류하는 책임의 반 이상은 문재인에게 있다. 문재인은 잘 기억할 것이다. 2007년 그때, 외교통상부와 청와대에서는 진보좌파를 지향하는 이른바 ‘탈레반’들이 대북정책을 보수진영 보기에 친·종북으로 몰고 가려고 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2007년 11월 18일 문제의 그날 저녁, 미국이 포함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인권결의안에 찬성투표를 하자는 송민순은 ‘탈레반의 보스들’인 문재인 비서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1대 3의 격론을 벌였다.
참으로 무지몽매한 결정이다. 한국의 노력으로 독소조항이 빠진 초안을 확보한 북한에 의견을 물으면 보따리 하나 더 내 놓으라는 식으로 반대나 최소한 기권을 요구할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19일 노 대통령이 방문 중인 싱가포르에서 안보실장 백종천이 ‘확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면서 송민순에게 내민 쪽지는 예상한 대로였다.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안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문재인팀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도 회담 날짜가 결정될 때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에 큰 발언권을 가진 미국에도 충분히 사전에 통보하지 못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10·4 남북정상선언 제4항에 “남북 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하도록 추진한다”는 구절에도 송민순은 반대했다. 3자라는 말은 북한이 사정에 따라 중국이나 한국을 빼겠다는 전술을 구사할 여지를 갖겠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오늘에 비하면 9년 전의 남북관계는 밀월시대였다. 문재인에게 상황장악력이 있다면 이런 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 “남북관계가 좋은 때여서 인권결의에 기권하자고 했다. 북한에 확인하는 것도 그때 상황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판단착오였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