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회고록 질문 안 하기로 했죠?” 말도 못 꺼내게 한 문재인

중앙일보

입력 2016.10.19 02:09

수정 2016.10.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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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정으로 충북 지역 경제 현장을 찾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후 괴산군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매장을 둘러본 뒤 떠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송민순 회고록’ 논란과 관련해 “나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깐, 나 문재인이 두려워 일어나는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 오늘 여기(일정)에 국한해 주세요.”

18일 충북 진천의 어린이집을 찾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쾌한 기색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끊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와 관련해 ‘북한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사전통보를 한 것이냐, 동의를 구한 거냐’는 질문이 나온 뒤였다. 그래도 질문이 또 나오자 “기억이 좋은 분들에게 들으세요”라고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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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에서 열린 주민간담회에서는 “ 저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깐 저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자들에게는 “한마디로 군대에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걸핏하면 종북 타령이냐”며 여당에 불만을 표시했다.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을 만나선 "정치를 하다보면 맷집도 세야 한다”고 했다.

남의 말하듯 다른 이에게 물으라니
대선 주자로서 공인 의식에 의문
“정치하다보면 맷집도 세야” 발언도
새누리 “문, 송민순 말 인정하는 셈”

하지만 문 전 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관계의 매듭은 계속 꼬이고, 여야 공방도 격화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녹아내리는 색깔론의 빙하 위에 올라탔다”고 받아쳤다.

문 전 대표는 회고록 논란이 불거진 이래 새누리당의 공격엔 맞대응하면서도 사실관계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심지어 17일엔 “( 결의안에) 내가 찬성했는지 기권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지금 가장 기억을 잘하는 사람은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송 전 장관 아닌가. (문 전 대표가) 송 전 장관의 말을 사실상 인정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의 경쟁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문 전 대표가 진실을 밝혀 빨리 (사실관계) 정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불만은 더민주에서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유력 대선후보로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계산이겠지만 진실을 모르는 당도 무턱대고 말려들기만 하면 안 된다”며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모르면서 막으려고만 하는 새누리당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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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표는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다. 논란이 된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사실상 주재했다. 사실관계 규명의 책임이 과연 그에겐 없을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며 남의 일 대하듯 하니 야당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공인의식’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글=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