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젊은이들 모여들며 성수동에 이색 공간 생겨나
격식보다 편안함 강조한 인테리어 마음에 쏙
구운 망고 곁들인 돼지등심요리 아내가 좋아해
더불어 그런 건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다양한 공장들이 일찍부터 생활터전으로 자리 잡았던 지역이라 이들을 비집고 새로운 문화·트렌드가 싹트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도전과 파격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하나 둘 성수동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멋진 이유는 여느 동네와는 다르게 성수동을 자신들이 변화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기존 성수동의 분위기와 공생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값비싼 간판보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성수동 색깔에 맞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번에 찾아낸 곳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레스토랑이다. 인터넷을 뒤지다 성수동 공장들 한가운데 프렌치 레스토랑이 오픈했다는 누군가의 포스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하루 종일 뜨거웠던 여름 해가 노을 속으로 녹아들고, 미처 일을 끝내지 못한 기계음과 힘 있는 망치소리가 골목 사이를 울릴 때, 와이프에게 “일단 따라 오라” 하고 앞장섰다. 파랗게 칠한 벽과 문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렁팡스(L’enfance). 프랑스어로 ‘어린 시절’이란 뜻이다
실내는 아담했다. 작은 바와 홀, 주방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짙은 흑갈색 테이블과 정형화 되지 않은 여러 타입의 클래식 나무 의자, 올리브 그린컬러의 가죽 붙박이 의자 등 요란하지 않은 가구들에서 차분함이 느껴진다. 벽면에 걸린 큰 거울들 덕분에 공간이 확장돼 보이는 효과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정형화된 프렌치식당의 격식 있는 세팅이나 부담스러운 인테리어가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따스한 분위기였다. 자리에 앉아 창가에 드리워진 하얀 면 커튼 사이로 바라보는 성수동의 느낌은 또 새롭다. 성수동 공장들 사이에서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무척 특별해진 느낌이다.
결혼기념일도 축하할 겸 식전주로 샴페인과 함께 전채요리인 앤다이브를 주문했다. 작은 배춧속을 한 장씩 뜯어놓은 듯한 앤다이브 위에 고트 치즈와 넛츠류가 올라가 있고, 그 위에 자몽·건포도가 들어간 소스를 한 스푼 얹어 샴페인과 먹으면 식전 입맛 돋우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메인요리! 버섯을 좋아하는 나는 버섯 파스타를, 고기를 좋아하는 와이프는 고수를 곁들인 돼지등심과 구운 망고를 주문했다. 이미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웠기에 레드와인은 글라스로 주문했다.
생면에 양송이버섯, 포르치니 파우더가 함께한 파스타는 버섯 향과 소스가 적절히 면에 스며들어서 따뜻할 때부터 차가워졌을 때까지 오랜 동안 와인과 함께 하기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어느덧 성수동은 적막할 만큼 조용해졌다. 공장들 불빛도 하나 둘 꺼지고, 낮에 느낀 활기와는 거리풍경이 사뭇 달랐다.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진 거리를 걷다보니 낮에는 잘 안 보이던 다양한 거리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그날 우리 부부는 저녁 늦게까지 와인에 취해 성수동을 거닐었다.
렁팡스
● 전화 : 02-465-7117
● 영업시간 : 점심 12시~15시 (라스트오더 14시) / 저녁 18시~23시 (라스트오더 21시). 월/일요일 휴무
● 주차 : 협소,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 메뉴 : 버섯파스타(2만원), 앤다이브(1만4000원), 돼지등심(2만8000원)
● 드링크 : 하우스 와인(잔 1만5000원 병 6만5000원), 레드 15종(5만원~26만원), 화이트 10종(5만원~21만원), 스파클링 4종(5만원~13만원)
이주의 식객
패션 디자이너. 아내 윤원정과 함께 부부의 영문 이름을 딴 브랜드 ‘앤디 앤 뎁(ANDY & DEBB)’을 17년째 이끌고 있다. 언제나 포마드를 이용한 2:8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젠틀맨. 업계에선 오래된 자타 공인 미식가. TV 맛프로 ‘수요미식회’에도 가끔 얼굴을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