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0원 등록금’ 약속…달갑지 않은 서울시립대 학생들

중앙일보

입력 2016.10.18 02:07

수정 2016.10.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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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4학년 박모(24)씨는 매 학기 수강 신청을 할 때마다 진땀을 뺀다. 2011학년도 입학 이후 이수하지 않은 과목을 찾기 힘들어서다. 그는 “2012년 반값 등록금이 시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학교 측에 ‘수업을 다양하게 늘려 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2012년부터 5년째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서울시장이 되면서 선거 공약이었던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 최근엔 박 시장이 한발 더 나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산 모자라 강의 줄고 연구비 삭감
학생들 “반값 등록금의 역설 체감”
총학 “강행 땐 실력행사 나설수도”

그런데 이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15일부터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0원 등록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신호인 총학생회장은 “전면 철회를 요구할지, 시기를 미룰지 정한 건 없다. 서울시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강행한다면 실력 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반값 또는 면제가 된다면 학생 모두가 환영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반값 등록금 시행 이후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시간강사를 줄이고 수업 규모를 키웠다. 서울시립대의 자체 수입금은 2011년 498억1300만원에서 2015년 306억3700만원으로 감소했고, 시간강사는 같은 기간 712명에서 408명으로 43% 가까이 줄었다.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는 57개(2011년)에서 112개(2015년)로 늘었다.

교수와 학생들도 반값 등록금의 역설을 수업 중 체감하고 있다. 도시과학대학 A교수는 “소수정예로 해야 하는 실습 위주 수업도 반을 합쳐 40~50명을 앉혀 놓고 하니 강의 질이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에 입학한 4학년 송모씨는 “대규모 강의를 수강하면 교수님 목소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다. 강의실 뒤쪽에 앉으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 시장의 등록금 전액 면제 발언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교수와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교수 등에게 돌아가는 연구비가 반값 등록금 시행 이후 뚝 떨어졌다. 2011년도엔 50억원이 넘는 대학 자체 연구비가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돌아갔으나 2014년도엔 자체 연구비 규모가 33억원 정도로 40% 가까이 줄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연구에 대한 투자가 대학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학교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지 않은 채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건 학교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