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윤학자 부부가 일군 목포 ‘공생원’
공생원은 일제 강점하 1928년 10월 설립됐다. 윤치호 기독교 전도사가 냇가 다리 아래에서 지내던 고아 7명을 돌본 게 계기였다. 윤 전도사는 ‘거지대장’으로 불리면서도 아이들을 먹이고 재웠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들에겐 글을 가르쳤다.
6·25 직후 500명을 넘기도 했던 공생원생은 지금은 60명. 미취학 아동 14명, 초등학생 12명, 중학생 9명, 고등학생 17명, 대학생 8명 등이 행정·보육 담당 직원 20여 명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간 공생원을 거쳐간 아이들은 4000여 명에 이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단체 지원금, 개인 기부금 등 한 해 10억여원이 공생원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공생원 곳곳엔 윤치호 부부를 기리는 시설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강당 앞 창립 20주년 기념비가 대표적이다. 공생원이 위치한 대반동 주민들이 49년 6월 15일 세웠다. 옆 뜰엔 사랑의 가족 기념비와 부부 흉상이 있다. 2003년 전태홍 당시 목포시장과 시민들이 낸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일본 기업인, 정치인들이 남긴 흔적도 적지 않다. 마쓰오 시즈마 일본항공(JAL) 사장은 69년 윤치호 부부의 아들인 윤기 윤학자 공생재단 명예회장이 NHK에 출연해 전한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공생원에 ‘JAL 하우스’를 지어 기증했다. 공생원 졸업생들을 위한 일종의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된다.
공생원 앞뜰에 있는 매화나무 20그루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 전 일본 총리가 뇌경색으로 작고하기 두 달 전 공생원에 보낸 선물이다. 윤 여사가 숨지기 전 “우메보시(일본의 전통음식 매실 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매화나무를 보냈다. 창립 80주년 땐 오부치 전 총리의 부인이 이곳을 찾았다.
공생원은 종합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해 공생원뿐 아니라 장애인 생활시설 및 직업재활시설도 운영한다. 정애라 공생원장은 윤학자 여사의 외손녀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