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두 영화가 나란히 개봉했다.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와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하 ‘미스 페레그린’)이다. 특히 ‘아수라’는 정우성·황정민·주지훈 등 ‘어벤져스급’ 남자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러니 개봉 첫날 관객은 당연히 ‘아수라’에 몰렸다. 그런데 ‘미스 페레그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수라’를 둘러싼 평가가 엇갈린 데 비해, ‘미스 페레그린’에 대한 평가는 꽤나 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바로 상상력이 있다. 버튼 감독의 상상력에 대한 호평 말이다.
"아수라’는 캐릭터에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평면적 인물들 위에 가혹한 현실만 있을 뿐,
상상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아수라’는 캐릭터에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부패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불가피한 선택, 악질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부도덕한 행동 등에 대한 입체성이 부족해졌다. 평면적 인물들 위에는 가혹한 현실만이 점입가경으로 쌓여 간다. 물론 이것을 상황에 억눌린 인간상의 묘사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상력은 이야기 속에서 더욱 첨예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미스 페레그린’은 미국산 판타지영화의 최종본처럼 느껴진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에 부딪치는 것은, ‘엑스맨’ 시리즈(2000~) 등 수퍼 히어로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설정 아닌가. 특정 시간대가 반복되는 ‘타임 루프’ 역시 판타지 장르의 단골 소재다. 이 영화는 이처럼 흔한 상상들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무거운 현실 위에 세웠다. 버튼 감독은 그 전쟁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착하지 않고, 코믹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전투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적으로 설정한 후, 그 괴물과 싸우는 방식을 경쾌한 상상력으로 담아낸 것이다.
비리 정치인과 독종 검사 사이에 낀 형사의 심리를 파고든 ‘아수라’ 그리고 나치의 무차별 폭격 앞에 놓인 소수자를 다룬 ‘미스 페레그린’.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영화 속 현실이 더 엄혹할까. ‘현실이 가혹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말은 그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영화를 통해 잔혹한 현실을 보여 주고 싶다면, 오히려 사실 자체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더 필요할 듯하다. 세상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그 재현 양상마저 폭력적이어야 할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상상력의 부재가 가져온 폭력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