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인 ‘현장’은 세로 4m 88㎝, 가로 6m 50㎝ 대작이다. 관람객이 세트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체험을 위해 다섯 폭 캔버스의 좌우를 병풍 치듯 둥글렸다. 설치에 공들인 효과가 난다. 수십 명 작업조가 각기 제 소임에 매달려있는 모습이 생생하다. 분초를 다투는 현실의 반영일까. 제대로 들여다볼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 얼굴은 죄다 뭉개졌다.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도록 칠을 하지만 가짜인 세트장과, 가짜 현장을 캔버스 위에 진지한 회화로 고착시켜 탄생한 진짜 세트장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다. 자신이 잘 아는 것을 그리는 자신감 넘치는 붓질이 보는 이 눈을 시원하게 끌어당긴다.
제38회 중앙미술대전 시상식
박경진씨 ‘현장’ 최고 영예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한 뒤
화실로 돌아와 자신만의 작업
작가의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이 돈 안되는 미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가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안 되겠니”라 하신다는데 이번 수상으로 그 질문에 작은 쐐기를 박게 됐다고 기뻐했다. 작가는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로 지내는 요즘, 동굴 같은 개인 작업실에서 걸어 나와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가 힘이라고 했다. 내년 개인전을 앞두고 ‘현장’을 더 현장처럼 구성할 수 있도록 보다 큰 작품들에 도전하고 있다.
운영위원 대표인 정현 인하대 교수는 “올해 중앙미술대전은 회화의 다양성, 설치미술의 개념적 접근, 역사와 기억을 재해석하는 영상물이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오늘의 미술은 작가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 또는 작용이 관객에게 미학적 의미를 던져준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선정 작가전은 그룹전으로 보일 만큼 관계 맺기가 도드라졌다”고 설명했다.
심사평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우리 미술 다양성 넓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우리 미술 다양성 넓혀
◆공성훈(화가)=올 선정작가들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며 우리 미술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귀중한 작가들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자연과 세계에 얽어맨 듯한 흥미로운 그림(김정옥),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역할(김현주), 생계를 위해 일하는 현장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 계획의 긴장 또는 어긋남(박경진), ‘날 것’ 같은 힘이 있는 표면(박석민), 회화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장점(범진용), 설치작품에 사용하는 다양한 매체나 재료를 세삼하게 다루는 솜씨(신승주), 함축적이고 시적인 영상이 매력(안유리), 신화와 모험담 등을 조합한 화면이 뛰어난 회화(이지연), 공학과 기술의 능숙함이 조직한 기계작품(전형산), 명암이 섬세하며 색감이 풍부한 흑백 화면(정지현).
◆안소연(미술비평가)=회화에 대한 동시대의 관심사가 크게 반영되었던 반면, 최근 국내 미술 현장에서 뜨거운 쟁점을 이끌어온 디지털 무빙이미지나 퍼포먼스, 회화에 대한 형식 탐구, 화이트 큐브 디자인 등의 화두가 지원자들 작업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선정작가들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방법론을 모색해 가는 태도가 돋보였다. 동시대 미술의 각축장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계속해서 보여주길 바란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