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창설 이래 우리 기초 문화예술의 뿌리를 40여 년간 지탱해 온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기금)이 2018년 전액 고갈될 위기를 맞았다. 복권기금에 출처를 두고 있는 소외계층 문화향수 사업을 제외한다손 치더라도 우리 예술가 창작지원 및 문화 인프라 조성,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국제문화교류 활성화 등을 위해 쓰여야 할 지원금 1000억여원은 말 그대로 증발해버릴 위기다. 40여 년 전 ‘민족문화예술 중흥’이라는 기치를 걸고 조성됐던 문예기금이 아이러니하게도 ‘문화 융성’을 국정과제로 내건 현 정부에 와서 고갈을 맞게 되는 셈이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뿌리는
소설·시 등 기초 문화예술
당장 돈 안 된다고 무관심한 건
민족 정체성 포기하는 셈
문화예술은 어느 나라에서나 유구한 시장 실패 영역이다. 73년 당시 문화예술진흥법 제정은 휴전 이후 육체적 생존에만 치우쳐 문화적 생존을 경시하고 있는 민족의 미래에 불을 밝히기 위한 투쟁이었다. 문화예술이 발휘하는 힘이 우리 민족의 문화적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단단한 믿음하에 지난 40여 년간 약 2조원의 문예기금이 우리 문화예술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2003년 이후 새로운 재원이 투입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예기금은 언제나 더 낮은 곳으로, 더 널리 임했다. 한류에 힘입어 드라마·웹툰·게임 등의 문화콘텐트 산업에 힘이 실리는 동안에도 기초 문화예술은 말없이 튼튼한 뿌리 역할에 충실했고, 문예기금은 기꺼이 토양이 돼 주었다. 그렇게 도달한 미래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예기금의 전면 고갈이다.
공공 지원 의존도가 높은 우리 문화예술 생태상 문화예술 지원의 지속성과 독립성이 훼손됐을 때 촉발될 예술계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관계부처는 물론이고 피해 당사자가 될 예술계조차도 이 파행에 대해 쉬이 간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직간접적인 피해를 떠안게 될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고통을 느끼기 전까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깨달을 것이다.
문예기금의 고갈이 단순히 어느 기관의 공과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척도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일이 그저 개인의 휴척(休戚)을 좌우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이 문제는 이제 우리 다음 세대의 정체성 확립, 즉 민족의 문화적 생존을 담보하느냐 아니냐의 국민적 위기의 차원에 걸려 있다. 그에 상응하는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미국의 경우 국립예술기금위원회가 매년 의회로부터 직접 국립예술기금을 배정받아 문화예술계 전반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예산이 아닌 국립예술기금의 형식을 유지해 투입받는 것이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절차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 지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장치다. 영국 문화예술위원회의 경우 복권기금을 주요 재원 중 하나로 삼고 있으나, 안전장치가 없어 언제든지 이해관계에 따라 전입이 변동될 수 있는 우리의 문예기금과는 달리 ‘복권기금법’을 통해 재원의 안정성을 굳게 확보하고 있다. 두 사례 모두 국내에 적용하기에 하등의 무리가 없는 대책이다.
세계 뮤지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로열음악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해 그 성취의 기초를 마련했고,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은 런던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타계한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년에는 문학이 천국이 돼 주었다. 그렇다면 이 다음 세대의 예술가를 위해 한국엔 무엇이 있어야 할까. 답은 자명하다. 중요한 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둘러 행동해야 한다는 점뿐이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