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으로서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기 위해 부모님의 권유로 스키를 타기 시작한 양 선수.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키는 시각장애인이 도전하기에 부적합한 종목이다. 스키장이 대부분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안압에 영향을 주고, 흰 눈빛이 반사되는 것도 선수들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양 선수의 아버지는 “어릴 때도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곧잘 슬로프에서 내려왔다. 그래도 스키선수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본인의 의지가 강했지만, 이렇게 선수 생활을 전문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양 선수는 2014년 소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자 시각스키 대회전 부문에서 1, 2차 시기 합계 3분 5초 90으로 아쉽게 4위를 기록했으나, 이 성적은 알파인 스키 대회전 경기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 중 최고 기록이다.
“전 눈이 나쁘니까 운전도 못하고,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스키를 타면 오직 그 속도 안에서 아무 생각 안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림 말고도 진짜 잘 하는 걸 찾고 싶었지만, 선수 제안 받았을 때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나, 둘” “업, 다운” “턱! 스탑!”
앞을 치고 나가는 고운소리 선수, 그리고 바로 뒤이어 활강하는 양재림 선수.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두 사람은 블루투스 기기에 의지해서 소통한다. 30개가 넘는 기문을 무사히 통과해서 내려와야 한다. 경기 중에는 둘만의 소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미세한 잡음도 환호도 허락되지 않는다. 두 사람 간격이 많이 벌어져도 실격 요인이 된다. 끊임없이 가이드러너가 뒤를 돌아보면 상황을 확인한다. 국제 경기에서는 30개가 넘는 기문의 위치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선수들은 경기 1시간 전 미리 코스를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잠시 보고 경기 루트를 외우고 익혀야 한다.
"혼자 타면 고독한 싸움이지만, 함께 타면 아름다운 도전입니다."
동일한 기문을 두고, 턴 하는 시점 조차도 다르다. 하지만 동일종목의 일반인 스키선수 대비 20~30% 내외밖에 기록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지금은 1년에 300일 이상을 함께 한다.
고운소리 “언니(양 선수)가 힘들고, 즐겁고 이런걸 잘 얘기해요. 그러면서 공감하고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언니는 정말 가족같은 사람 입니다. 그만큼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 둘만의 신뢰관계나 둘의 존재 자체가 ‘연결’인 것 같아요.”
선수랑 가이드러너간에 신뢰가 없으면 선수는 모든 위험에 노출된다. 넘어졌는데 가이드가 모르고 있다거나 사고가 생길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쌓여야 하는 이유다.
고운소리 가이드러너 선수
“처음에 다들 ‘혼자 타도 힘든데 둘이면 훨씬 더 힘들거다’라고 걱정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혼자 타면 ‘고독한 싸움’이었는데, 둘이 타면 오히려 덜 긴장돼요. 제가 책임감을 많이 느껴야 하긴 하지만 즐겁기도 하고요. 언니는 의지력과 정신력이 정말 강해요. 경기를 할 때면 오히려 제가 압도당해요.”
그러나 시각장애인 스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목표와 꿈이 있다. 양 선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시 맘을 다잡았다”고, 고 선수 역시 “지금 현재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