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미세먼지 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성적표’다. 지난달 27일 WHO는 세계 각국의 국민이 겪고 있는 초미세먼지 오염도(2014년 기준)를 공개했다. 실제 측정치와 컴퓨터 모델링 등을 통해 WHO는 세계 인구의 92%가 공기 질 권고치를 초과하는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상태임을 지적했다.
WHO가 매긴 초미세먼지 성적표
중국서 날아온 대기오염 물질이
한반도에 골고루 영향 미치기 때문
한국 공기 질 OECD 34개국 중 최악
이대로 가면 2024년 연 12조 손실
중국과 공조해 미세먼지 유입 막고
경유차·화력발전 관리 서둘러야
세 번째 그룹은 소득도 높고 대기오염도 높은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쿠웨이트와 같은 중동의 산유국이 주로 속해 있다. 전문가들은 연료 품질이 낮고 오염 배출이 많은 중고차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오염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한국도 소득이 늘면서 대기오염 방지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선진국처럼 오염이 줄지 않는 건 ‘세계의 공장’ 중국 때문이다. 국내 미세먼지에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0~50% 정도다. WHO에 따르면 한국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선진국 그룹의 두 배 수준인데, 중국발 오염이 없다면 선진국에 근접한 수준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자동차·빌딩이 밀집한 서울과 그렇지 않은 제주의 미세먼지 농도가 최근 비슷해진 것도 두 지역 모두 중국발 대기오염의 영향을 받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령화로 조기사망 위험 훨씬 커져=그렇다면 한국은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사망의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을까. 한국(노출농도 2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터키(34㎍)에 이어 두 번째로 초미세먼지 오염이 심하다. 반면에 한국 인구 10만 명당 대기오염에 의한 조기사망자 수(16명)는 34개국 중 10위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조기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사망 위험은 고령자에게 훨씬 크다. 고령화 속도가 무척 빠른 한국도 조기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기오염은 경제적 손실도 초래한다. OECD는 현재 대기오염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 의료비 지출, 농업생산 감소 등 경제적 손실이 전 세계 GDP의 0.3%에 이른다고 밝혔다. 2060년에 이르면 세계 GDP의 1%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OECD는 회원국 중 가장 큰 손실을 입게 될 나라로 한국(-0.63%)을 꼽았다.
◆‘친환경차만 진입 가능’ 파리서 배워야= 정부에서는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국 정부와 공동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동북아환경협력계획(NEASPEC)을 통해 국경을 넘는 대기오염 문제를 다뤄 나가려 한다. 하지만 중국발 오염을 단기간에 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장은 국내 오염을 줄이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10년 안에 프랑스 파리 수준(18㎍/㎥)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낡은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석탄화력발전소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대책을 밝혔다. 수도권에선 단계적으로 노후 경유차와 운행을 제한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와 환경단체 사이엔 “기존 대책의 재탕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대기오염 배출량이 얼마나 되고 각 대책을 시행했을 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대책만 열거했을 뿐”이라며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김법정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과장은 “ 초미세먼지의 원인부터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자동차·공장 등에서 1차로 배출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기 중에서 반응을 통해 2차적으로 생성되는 양도 무시할 수 없다”며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이나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황산화물(SOx) 등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선진국보다 심각한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을 감안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까지 도심에 친환경차만 진입할 수 있게 하고, 2020년 이후에는 모든 차량의 도심 통행을 제한하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성시윤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