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풍경사진가들은 날씨에 예민합니다. ‘고수’들은 날씨를 예측하는 ‘신통력’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 양수리에 가면 물안개가 핀다’거나 ‘날이 맑아 함백산에 오르면 은하수를 볼 수 있다’ ‘남한산성에 오르면 노을이 좋겠다’ 등등. 무지개가 뜨는 것까지 예측합니다. 물안개·노을·운해·무지개 같은 기상현상은 일기예보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날씨의 패턴을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전국민의 사진작가 시대’에 날씨를 예견하는 능력은 영업(?)이 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겨울바다의 물안개를 찍으러 울산 강양항에 간 적이 있습니다. 컴컴한 새벽이었습니다.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버스가 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사진작가 고00와 함께 하는 풍경사진’이라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날씨 중시해야 … 소재주의에 빠질 위험 경계
인솔자인 고모씨는 유명 사진가는 아니지만 사진교실을 운영하면서 수강생들과 사진촬영 명소를 순회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의 경험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하고, 일기예보는 물론 국내외 유명 기상사이트 정보를 모으고 위성사진까지 분석한다고 합니다. 또 전국에 있는 아마추어 풍경사진가들과 연계해 매일 기상정보를 주고 받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그날 강양항 일대에는 환상적인 물안개와 함께 소위 ‘오메가 일출(해가 뜰 때 수평선에 반영이 돼 오메가 모양(Ω)이 나타나는 현상)’을 연출했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 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그의 저서 <임천고치>에서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계절별로 매우 세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구름과 비, 눈을 묘사한 대목을 볼까요. ‘실제 산수의 구름기운은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에는 수증기가 위로 오르게 보이고, 여름에는 자욱하고 왕성하게, 가을에는 성글고 얇게, 겨울에는 어두컴컴하고 담담해 보인다…(중략)…비 지나가는 여름 산, 비 내릴 듯한 짙은 구름, 별안간 부는 바람과 쏟아 붓는 듯한 비가 있고, 또 회오리 바람과 쏟아붓는 듯한 비, 여름 산에 비 그치고 구름 돌아감, 여름 비가 계곡에 폭포처럼 뿌림…(중략)…겨울에는 눈이 내릴 듯한 찬 구름, 음침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 음침한 겨울에 내리는 싸락눈, 빙글빙글 도는 바람과 회오리치면서 내리는 눈, 산골 물 위에 내린 적은 눈, 사방이 시냇가이고 멀리 눈 내리는 광경, 눈 내린 후의 산가, 눈 속의 어부 집, 배 떠날 준비를 하면 술을 삼, 눈을 밟으며 멀리 술 사러 감, 눈 온 시냇가의 평원 경치가 있고, 또 바람 불고 눈 내리는 평원경치, 산골 물 끊어지고 소나무에 눈 덮힘, 소나무들이 있는 집에 취한 듯 마구 내리는 눈, 강가 정자에서 바람을 읊조리며 시를 짓는 모습 등이 있는데 모두가 겨울경치의 제목이 된다(<중국화론선집>, 김기주 역, 미술문화, 2012).’
일대를 풍미한 위대한 화가답게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바람 불고 비가 오는 여름 풍경과 눈 내리는 겨울 서정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기록의 힘이 놀랍습니다. 평소 천기를 읽고 그 경험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쌓은 흔적이 보입니다. 구름·바람·눈·비 등 산수화의 다양한 소재를 계절별로 정리하고 패턴화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지구가 탄생한 이후 단 하루도 같은 날씨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유형의 ‘패턴’은 반복됩니다. 기상청의 수퍼컴퓨터라는 것도 결국 기온·습도·풍속·지형 등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하고 그 패턴을 수식화하는 것입니다.
사진 찍으며 겪은 다양한 경험 기록해둬야
시간과 공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패턴이 읽혀지고, 예지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풍경사진을 찍는 데 아주 큰 자산이 됩니다. ‘말 발자국과 수레바퀴 자국이 천하의 반은 돼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는 말은 결국 ‘경험의 데이터베이스’를 꽉 채우라는 뜻입니다. <이코노미스트>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