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가 된 X세대, 나만의 스타일 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6.09.30 00:02

수정 2016.09.30 07:3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 패션·뷰티시장 큰 손 ‘아재 슈머’
 

아재-. 아저씨를 낮춰부르는 이 말이 요즘 패션·뷰티 시장에서는 큰 손으로 대접 받는다.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를 아우르는 이들이 최근들어 외모를 가꾸는 데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아재 파탈’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 분위기에다, 20대의 사회 진출이 점점 늦어지면서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아재 슈머(아재+컨슈머)’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봤다.



온·오프 시장 중년 남성 씀씀이 늘어


와인 수입업체에 다니는 한우성(40)씨는 나홀로 쇼핑을 즐긴다.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혼자 경기도 파주나 여주의 아웃렛 매장을 가고, 신상품이 나올 때쯤 백화점을 ‘시장조사’ 차원에서 들른다. 인터넷 쇼핑도 주저하지 않는다.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는 ‘직구’를 시도하고, 패션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 가입해 어느 사이트에서 세일을 하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한씨의 옷 구매액은 한 달 평균 100만 원. 그는 “쇼핑을 사치라기보다 취미로 즐긴다”고 말한다.

유통회사를 운영하는 이계홍(55)씨는 최근 피부 시술에만 300여 만 원을 썼다. 점 빼는 것부터 시작해 피부 재생 주사를 맞았고, 3주 전엔 또렷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썹 문신을 했다. 3년 전 병원에 처음 발을 들이며 다양한 시술 종류를 알게 됐는데 이제는 늘어진 턱선을 정리하는 시술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이씨는 “비싸지만 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패션·뷰티시장에서 이들처럼 ‘가꾸는’ 중년남성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삼성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40대 이상 남자가 구매한 패션·뷰티 업종 매출액은 2013년 16%에서 2015년 28%로 껑충 뛰었다. 온라인 시장도 비슷하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의 전체 남성 구매자 가운데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분기에만 41%, 거래액도 39%를 차지했다. 이 중 브랜드 잡화, 수입 명품, 화장품·향수의 경우 50% 이상 금액이 증가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의 경우 일찌감치 1조2000억원대로 성장했고(유로모니터 2014년 자료), 피부과·성형외과를 찾는 4050 남성환자들 역시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차앤박피부과 이상정 원장은 “종전엔 여드름 문제를 가진 10대와 검버섯 제거를 원하는 노인층으로 양분돼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30대 후반~50대 남성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트렌드에 맞춰 ‘아재슈머’들을 위한 매장과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신세계백화점 남성전용관 ‘멘즈 살롱’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문구·만년필·남성잡지 등 단독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고, 지난달 펜디에 이어 이번달 루이비통은 국내 처음으로 남성 전용 매장을 선보였다. 뷰티업계의 경우 보톡스·필러·레이저시술은 물론, 늘어진 얼굴선을 올려주는 리프팅 수술과 상안검·하안검이라 불리는 눈매 교정수술 등 세분화된 시술이 중년남성들을 공략하고 있다.



더 제대로, 더 내공 있게 사는 아재들

아재들의 소비라고해서 결코 허술하지 않다. 오히려 내공이 깊다. 목표를 갖고 먹잇감을 찾듯 ‘선택과 집중’이 두드러진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분명히 정하고, 거기에 맞춰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20대보다 시행착오가 적다는 게 특징. 아무래도 ‘연령 제한’이 작용해서다. 패션의 경우 트렌디한 캐주얼보다는 재킷·셔츠, 뷰티라면 ‘동안’을 위한 화장품·시술에 몰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디자인회사 대표인 오영식(51)씨도 전략적 쇼핑족이다. 1년에 두 번 해외 출장길에만 입을 옷을 구입한다. 제냐·로로피아나 같은 고급 수트 원단으로 만드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현지 양복점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슬림한 실루엣의 수트를 맞춘다. 명품 브랜드 레이블보다 10분의 1이상 싼 장점도 있다. 쇼핑 전에 필요 품목에 대해 자세한 리스트를 머리 속에 그려두기도 한다. 타이 하나만 잘못 골라도 수트부터 신발까지 다 무용지물이 되는 실패를 막기 위해서다. 한 번에 수 백만원을 쓰지만 덕분에 충동구매는 별로 없다.

정보 습득 역시 목적지향적이다. 남성수입편집숍 피넬타 전희욱 대표는 "과거 여자친구와 아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던 남자들이 3~4년 사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면서 "해외 사이트는 물론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을 보며 자세한 패션 정보를 얻어 웬만한 바이어들보다 전문적이다”라고 말했다. SNS에 올라 있는 해시태그를 보고 그 브랜드가 입고 됐는지 문의하는 고객들도 있는 수준. 타이 하나를 사면서도 눈에 보이는 디자인은 물론, 소재·색깔에 대한 스토리를 종합해 따지는 과거 일본 남성의 소비패턴을 닮아간다는 얘기다.

이렇게 깐깐하지만 길을 한 번 택하고 나면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는 것도 아재슈머들의 또다른 특징이다. 결혼 8년차인 최진환(42)씨는 처음엔 아내의 권유로 피부과에 갔다가 지금은 혼자서도 1주일에 1번씩 피부과를 방문한다. 늘어진 턱선을 갸름하게 만드는 지방분해 주사, 피부결을 매끄럽게 만드는 각질 관리, 피부톤 개선 관리를 번갈아가며 받는다. 피부 탄력을 높이기 위해서 1년에 한 번은 레이저 시술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피부 관리를 하다보니 점점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되면서 재미도 있다”며 “이젠 스스로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이나 시술에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고령화 시대에 먹히는 ‘청춘 산업’

과거 세대와 달리 중년 남성들이 패션·뷰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준 소장은 “사회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중장년층부터 신체적·심리적 활력을 유지하는 청춘산업이 먹히고 있다”고 해석한다.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이 시기를 ‘인생 후반전이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에서다.

대기업 광고팀 직원 정민호(39)씨도 그런 경우다. 여자 못지 않은 피부관리를 하는데, 아침엔 자외선 차단제부터 BB크림까지 챙겨 바르고 저녁엔 클렌징 오일과 진동클렌저를 써서 세안을 하는 수준이다. 그는 “피부를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젊음을 유지하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의지로 비춰지고 있다”면서 “가꾸는 목적은 더 멋있어지려는 게 아니고 더 늙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상명대 이준영 교수(소비자주거학과)는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X세대가 이제 아저씨가 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과거 중년 남성이라 하면 개인보다 사회 문제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의 ‘신 아재’는 자신의 취미나 여가에 더 관심이 많았던 젊은 시절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해외 연수·유학이나 여행을 자유롭게 경험한 첫 세대로서, 영어 구사는 물론이고 해외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 교수는 “과거 40~50대의 남성은 부동산·주식 등 실물자산에 투자했지만, ‘신 아재’들은 자신만의 취향이 드러나는 ‘개성적 자산’에 가치를 두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아저씨가 아재 파탈 되는 팁                              
1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라. 펑퍼짐한 기성복에 몸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체형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을 연구할 것. 단품 재킷과 치노 팬츠, 더블 브레스트 재킷 등 시그너처 아이템은 필수 구매품목이다.

2 컬러에 포인트를 줘라. 수트의 경우 검정·네이비·회색이 대다수다. 이때 타이·행커치프· 양말 하나에만 와인·민트처럼 살짝 튀는 색을 가미해도 미묘한 스타일 포인트가 된다.

3 바짓단 길이에 신경쓸 것. 발등을 덮는 대신 복사뼈 아래·위에 닿는 길이로 바짓단을 짧게 하면 전체적인 스타일이 달라진다. 길이에 맞춰 폭까지 줄여야 자연스럽다.

도움말=박만현 패션 스타일리스트
 
아재의 피부 관리 팁

1 자외선은 피부 노화의 주범. 무조건 피한다.
자외선은 색소 침착과 피부 노화를 일으킨다. 흐린 날이나 실내에 있는 경우라도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가능하면 오후에 한 번 더 덧발라야 한다.

2 담배를 끊는다.
흡연자의 피부가 거칠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담배를 피우는 남성은 안 피우는 남성에 비해 주름이 생길 확률이 2배나 높다. 특히 입 주위 피부에 산소 공급을 방해해 입가 잔주름이 심해진다.

3 피부 속 수분 채워주는 보습제 챙겨 바르기
중년에 접어들면 지성 피부도 건성피부로 바뀐다. 30ㅈ대 후반부터는 피부 속에 수분을 채워줄 수 있는 보습제를 매일 챙겨 발라야한다. 피부에 수분이 충분하면 오히려 번들거림도 덜해진다.

4 눈살을 찌푸리거나 눈을 치켜뜨지 않는다.
표정은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든다. 특히 눈살을 자주 찌푸리면 미간에, 눈을 치켜뜨면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긴다. 눈을 뜰 때는 이마에 힘을 빼야 한다.

도움말=이상정 차앤박피부과 원장
 


글=이도은·윤경희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oh.sangmin@joongang.co.kr,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