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 A아파트 단지에 이중으로 서 있는 차량들. 주차 공간이 부족해 화재 시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통로에까지 차량이 주차돼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한 경비원은 “자정이 넘어서면 주차장이 차로 꽉 들어찬다. 통로를 남겨뒀지만 대형 소방차는 서행하면서 들어와야 할 정도로 비좁은 게 사실”이라며 “진입로마저 이중주차가 이뤄지다보니 코너를 돌아 들어와야 하는 소방차가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비원이 주민 차 열쇠를 관리하지만 위급시 혼자서 몇 대나 빼 소방원들이 작업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단지내 진입로 차들로 막혀 손 못써
주차공간 부족, 통로에 이중주차
서울 아파트 68곳은 접근 힘들어
소방통로 못 막게 법적 규제 필요
소방차 통행을 막는 주차 차량이 대규모 화재를 부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도봉구 쌍문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 때도 길을 막은 ‘주차 차량’이 문제가 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소방차는 현장에 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차된 차량에 가로막혀 화재 장소에 접근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 이 화재로 일가족 5명 중 3명이 숨졌다. 이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있었지만 상황이 그랬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서울시내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는 493곳이다. 이중 68곳(13.8%)에서는 소방차 통행에 지장이 있었다. 소방차전용구획선이 그려지지 않은 곳은 101곳(20.5%)이었다.
이창식 서울재난본부 대응전략팀장은 “지하주차장이 있어도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단지가 서울 곳곳에 있다”며 “화재 발생 5분 이내가 ‘골든타임’이다. 그러나 주차된 차량 때문에 단지 진입로에서 소방차가 들어가는 데 애를 먹고 주차장에서도 비좁은 통로 때문에 서행을 하다 보면 골든타임을 놓친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에 소방차량이 정차할 ‘소방차전용구획선’이 없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곳에 주차를 해도 과태료 부과 같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전용구획선’ 지정은 서울소방재난본부가 2012년 6월부터 아파트 시공업체 측에 제시한 권고사항이다. 이 팀장은 “소방재난본부에선 소방차 통행로를 아파트 주차장에 그리고 주민에게 소방 통로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강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화재 진압 시 옥외소화전·소방차 출동로에 세워진 차가 파손되더라도 소방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차를 세우지를 않는다. 아파트 내 소방통로 확보 및 소방차전용구획선을 그리는 일은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통로·전용구획선 주차에 대한 과태료 부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