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재설계를 통합 지원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50+캠퍼스를 6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1호 격인 서북 50+캠퍼스는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서북 50+캠퍼스의 대표 입문과정이라 할 만한 50+인생학교가 9월 7일까지 2기 수강생을 모집했다. 8월 31일 정광필(59) 50+인생학교 학장을 만났다. 노후, 건강, 제2의 인생 등을 예상했는데 정 학장은 의외로 ‘세대갈등’이란 키워드를 먼저 꺼냈다.
기왕이면 누군가에게 도움될 만한 일 찾아야
강의 대신 워크숍 중심으로 평생교육… “뒷방 늙은이 자조 말고 뭐든 배워야”
청년들에게 뭐가 필요한지부터 물어봅니다.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든 행정 절차든 어떤 문제가 있겠죠. 이때 이분들이 나섭니다. 젊은 친구들이 몰라서 못 하는 문제, 힘이 없어 못 푸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고 해결책까지 찾는 거죠. 50대의 돈을 쓰라는 게 아니라, 50대의 능력을 쓰자는 겁니다. 불쌍한 노인 코스프레 말고, 어른들이 먼저 청년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세대갈등, 굉장히 난제 같지만 이런 작은 움직임이 쌓이면 의외의 지름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학장은 “최근 교육의 화두가 ‘입시’에서 ‘평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배움의 대상이 특정 세대인 것이 아니라 누구든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로 변했다는 의미다. “은퇴자 대부분이 쫓기듯 퇴직하죠. 그러니 뭔가 허탈합니다.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하는데 배움을 망설이면 안 되죠.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재교육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50+캠퍼스도 그렇고요. 직장인 과정도 있고, 주말 과정도 있습니다. 기회는 많다는 거죠. 이렇게 미리 배우러 나서야 은퇴 후 부담을 덜 수 있고 그 사이 새로운 관계망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향후 20년 동안 겪을 변화는 이전 20년 동안 겪은 변화와 비교도 못할 만큼 빠르고, 파괴적일 겁니다. 인공지능만 떠올려도 그렇죠.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50+세대도 학생의 자세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부터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학장을 맡고 있는 50+인생학교는 50+세대를 위한 대표적인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강의 중심인 보통의 재교육과 다르다. 10주 동안의 교육기간 중 강의는 단 두 번뿐. 대신 수강생이 직접 머리와 몸을 쓰는 워크숍 중심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강생들이 개별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활동한다.
1기 수강생들은 각종 네트워크를 연결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가치은행 커뮤니티’ ‘뇌운동 활성화 커뮤니티’ 등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어딜 가나 교양강좌가 넘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가르쳐 주는 강연도 많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강연을 들으면 도움은 되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체화하고,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50+인생학교는 입문과정입니다. 서북 50+캠퍼스 내엔 다른 좋은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이 인생학교에서 얻어야 할 건 작지만 의미 있는, 조금은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인생 후반전을 함께할 든든한 동료를 만나고, 그들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좋죠.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사실 그는 ‘학장’보다 ‘교장선생님’이란 호칭에 더 익숙하다. 20~30대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감방을 오갔던 정 학장이 ‘교육’에 눈 뜬 건 마흔살 즈음, ‘입시지옥’과 ‘사교육’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아이들의 비명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학교가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 학장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2003년 설립한 게 도심형 대안학교로 잘 알려진 ‘이우학교’다. 그는 초대·2대 교장을 맡아 개교 초기 기틀을 닦았다. 그런 그가 중장년의 삶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혁신학교 전도사가 평생 교육 길잡이로
서울시의 50+캠퍼스는 최근 다른 지자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중장년층의 재취업, 활력의 문제가 서울시만의 고민은 아니니까요. 최근 부쩍 강연 요청이 많습니다. 결국 모델의 문제겠지요. 아주 작은 염분이 바닷물 전체를 짜게 만들 듯 50+ 인생학교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세대 전체, 나라 전체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