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남자의 취향 저격한 아이템 봇물

중앙일보

입력 2016.09.20 00:01

수정 2016.09.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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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선호하는 주방 및 가전제품.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필립스 뉴 터보에어프라이어(튀김기), 테팔 2단 미니 믹서기, 알레시 와인 오프너, 스타우브무쇠 냄비 2종 세트, 크리스텔 캄포 도마, 리차드 지노리 콘테싸·까테나 접시, USM 수납장. 장소 협찬=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남성이 선호하는 디자인 반영
다양한 주방용품·가구 선봬
백화점·면세점 남성 편집숍
휴식·문화공간으로 업그레이드


회사원 김상진(36·서울 논현동)씨는 1주일에 2~3일은 가족을 위해 요리한다. 휴일에도 주방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 같은 다양한 음식을 만들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백화점 남성매장에 들러 쇼핑한다. 김씨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식탁 분위기를 연출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거나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맨플루언서(Man-fluencer)’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남자(Man)와 영향력 있는 사람을 뜻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합친 것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남성 소비자를 말한다. 요즘엔 맨플루언서가 장을 보고 음식 만드는 수준을 넘어 주방을 꾸미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있다. ‘요리하는 남성’이 늘어난 원인은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 증가로 남녀 생활 영역 구분이 사라진 때문이다. 방송의 요리 프로그램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성이 다루기 쉬운 주방도구
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르면서 남성스러움을 강조한 조리기구와 식기들이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생활용품 매장엔 최근 들어 남성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곳엔 남성의 장비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전문 주방용품이 많다. 완벽하게 도구를 갖추려는 남성을 위해 실용성과 전문성을 갖춘 제품이 주를 이룬다. 코너마다 남성을 겨냥한 특색 있는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체인 무늬를 두른 접시와 대리석 무늬가 들어간 앞접시와 커피잔이 대표적이다. 흑백 바탕에 체인이나 대리석 무늬가 강인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준다. 남성스러움을 강조한 가죽이나 블록 모양의 접시와 그릇도 있다.

티타늄 칼날을 장착한 일렉트로룩스의 믹서기

주철로 만든 콜맨의 프라이팬


무겁고 투박한 모양의 중식도(中食刀), 자연 모양 그대로의 느낌을 살린 항균 도마도 인기 품목이다. 재료 맞추기가 서툰 남성을 위한 내화유리로 만든 계량컵도 있다. 무쇠 냄비와 프라이팬도 인기 품목으로 손꼽힌다. 여성들이 사용하기엔 무겁지만 남성들은 선호한다. 코팅 기술이 발달해 고기를 굽거나 야채를 볶을 때도 잘 눌러붙지 않는다.


가전 매장에도 남성이 선호하는 제품이 많이 나와 있다. 분쇄 기능이 뛰어난 강화유리 믹서기, 자동 야채 다지기, 기름이 필요 없는 튀김기,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장용기 등은 남성 소비자들의 필수 품목이 됐다. 어두운 계열의 색상으로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뱀 가죽 모양의 디자인으로 남성에게 인기 있는 한국도자기의 프라우나 파이톤 컵

뱀 가죽 모양의 디자인으로 남성에게 인기 있는 한국도자기의 프라우나 파이톤 접시

남성을 겨냥한 주방가구도 등장했다. 한샘은 최근 콘크리트 느낌이 나는 마감재를 사용해 주방가구를 만들었다. 국내 주방가구 중에서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 이 제품이 처음이다. 디자인 업체인 비믹스는 콘크리트 느낌을 살려 조명기구로 만들었다. 둘 모두 콘크리트 특유의 거친 느낌이 남성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한샘 관계자는 “개성 있는 스타일을 원하는 남성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며 “콘크리트 소재로 만들어 디자인도 돋보이고 내구성이 뛰어나 주방가구뿐 아니라 앞으로는 내장재나 인테리어 소재로도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을 위한 쇼핑공간도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남성 전용 편집숍 매장에 헤어숍, 구두 수선 코너, 꽃집 같은 생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무용품, 피규어 같은 취미생활에 필요한 제품도 구입할 수 있다. 올해 안으로 농구·암벽등반 같은 실내 스포츠가 가능한 공간도 갖출 계획이다.

이발, 구두 수선 서비스 제공
롯데백화점은 편집숍에 액세서리, 사무용품, 피규어,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게 매장을 꾸몄다. 신세계 이마트는 성남 판교에 고가의 장난감을 체험할 수 있는 단독 매장을 열었다. 백화점을 찾는 남성 고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11년 전체 쇼핑객 중 26.4%를 차지했던 남성 고객은 지난해 28.8%까지 늘어났다.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 30.2%에 머물렀던 남성들의 구매 비중이 올 상반기 33.1%로 올라갔다.

면세점도 매장을 남성 위주로 재정비했다. 신세계면세점은 남성 전용 편집숍, IT기기, 스마트 토이 판매점 등 남성 취향에 맞는 전용 공간을 만들었다. 기존 여성 중심의 면세점과는 차별화된 전략이다. 수입맥주를 갖춘 코너와 ‘일렉트로 바’를 만들어 쇼핑하면서 커피와 생맥주를 즐길 수 있다.

유명 브랜드가 입점한 남성 편집숍도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문을 연 남성 편집숍 란스미어 한남점은 매장을 고객에게 개방했다.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거나 미팅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발과 면도를 할 수 있는 바버숍, 슈케어(구두 손질)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져졌던 화장품에도 남성 아이템이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루밍족(grooming)’을 넘어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을 비교하거나 메이크업 제품을 사용하는 ‘그루답터족(Groo-dopter)’까지 생겼다. 피부 타입에 맞는 기능성 스킨케어는 물론, 눈가의 잔주름을 없애 주는 남성 전용 아이크림까지 나왔다. 남자 눈썹용 아이브로도 있다. 눈썹 숱이 없거나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싶은 남자를 위한 메이크업 제품이다. 남성용 마스크팩과 파우더도 등장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최근 한국 남성 1명이 한 달간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쓰는 비용은 25달러30센트(약 3만원)로 세계 1위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와 요리하는 방송의 영향으로 패션·뷰티·요리 등 생활 전반으로 남성의 소비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사라지면서 남성 소비 트렌드는 앞으로 더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라이팬 사고, 눈썹 다듬고, 만화 캐릭터 그리고…
남자의 뉴 라이프스타일
남자들의 아지트가 변했다. 남성전용 쇼핑몰에서 주방 물건을 고르고, 옷 구경을 하면서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머리도 자른다. 전문가에게 얼굴 제모 서비스도 받고 조립식 완구를 구입해 어린 아이처럼 취미생활도 즐긴다.
 

`일렉트로마트` 킨텍스점 매장 내부에 설치된 대형 일레트로닉맨 피규어

쇼핑과 체험 한꺼번에
최근 남성 전용숍의 트렌드는 쇼핑과 체험을 함께하는 것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판교 알파돔시티의 일렉트로마트는 국내의 대표적인 남성 전용 체험 쇼핑몰이다. 지난해 6월 이마트 킨텍스점 내에 1호점이 생긴 뒤 크게 인기를 끌어 올해만 7개 지점을 오픈했다. 판교점은 매장 규모만 3300㎡가 넘는다. 가전 제품 위주였던 아이템에서 벗어나 패션·뷰티는 물론 아웃도어·레저까지 남자와 관련된 라이프 트렌드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일렉트로마트’판교점의 인기 코너 RC카 체험장.

식품과 주방용품·가전 종류도 많다. 예전에는 완성된 음식을 구매해 먹던 남자들이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서 맥주 만드는 기구부터 캠핑용 그릴 도구, 각종 소형 주방 가전까지 다양한 주방 제품을 찾는다. 특히 커피머신이나 프라이팬 등 몸집이 큰 주방 도구들은 디자인이 눈에 띄게 남성화돼 검정·주황이 섞인 강렬한 컬러 제품이 많아졌다. 남성 키덜트족이 가장 선호하는 코너인 피규어와 프라모델, 조종 자동차 RC카 체험장도 있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기 최고인 RC카 체험장은 전용 트랙을 갖추고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RC카를 직접 시연할 수 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주류 카페 ‘일렉트로 바’에 잠시 들러 가볍게 맥주 한잔을 즐기며 쉬어 갈 수 있다.

각종 캐릭터를 전시해 키덜트족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체험 박물관도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피규어뮤지엄W은 피규어와 장난감을 테마로 한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이다. 슈퍼맨·아이언맨·헐크·터미네이터 등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만화와 영화 캐릭터를 감상하고 직접 모형을 색칠해 볼 수 있어 남성들의 동심을 자극한다.

백화점 안 남성 놀이터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5층에 있는 ‘클럽모나코&헤아’.

백화점은 더 이상 여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가면 남성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멘즈아지트’는 지난해 롯데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전자기기 편집·액세서리 매장으로 남성 고객이 점점 늘어나면서 롯데백화점이 마련한 남자들의 놀이터다. 주요 상품은 카메라와 삼각대·가방 등 카메라 액세서리다. 멘즈아지트 매장 매니저는 “남자들도 필요한 물건 때문에 한번 방문하면 전체 매장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간다”며 “최근 드론·RC카·피규어 등 남성 취향에 맞춘 다른 품목들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인 남성들은 물론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오는 남자 어린이 손님, 외국인들로부터도 인기가 많다.

롯데백화점 본점 남성복 코너에 있는 클럽모나코 매장에 가면 작지만 깔끔하고 멋스러운 인테리어의 바버숍(이발소)을 볼 수 있다. 숍 안에 숍이 있다고 해서 숍인숍(Shop-in-shop)이라고 부른다. 의상뿐 아니라 스타일 전체를 가꾸는 남성 그루밍족을 위한 공간으로 옷과 액세서리를 구경하면서 이발과 면도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헤어숍을 찾는 이들이 하루에 최소 4~5팀이 넘을 정도로 이용객이 많은 편이다.

두 숍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에 민감한 남성에게 인기가 높다. 클럽모나코의 숍인숍 매장은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두 곳에 있다.

미용 관리하는 왁싱숍

잠원동‘ 다비드왁싱’에서 사용하는 왁싱 제품들.

남자들의 관심 영역이 패션·뷰티까지 넘어오면서 요즘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외모 가꾸기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눈썹·다리·겨드랑이 등 몸 구석구석에 난 털은 지저분한 인상을 주기 쉬워 왁싱 서비스를 받는 남성이 늘었다. 서울 잠원동 남성전용 왁싱숍 ‘다비드왁싱’은 한국미용경기대회 왁싱 심사위원인 남자 대표가 직접 왁싱을 해 준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기 위해 찾는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이 주요 고객이다. 서비스는 부위에 따라 1~2시간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거나 화상 또는 상처 부위가 있는 경우, 당뇨 등 특이질환이 있는 경우는 권하지 않는다.

모근까지 제거하기 때문에 노폐물이 안에 들어가면 염증이 생길 수 있어 3일 정도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사우나와 수영장 이용을 피한다.

또 다른 왁싱바 ‘캐치업’은 눈썹과 헤어라인·이마·인중 등 얼굴 왁싱을 주로 하는 왁싱숍이다. 16년 동안 왁싱을 전문으로 한 회사로 서울 압구정·명동 등 전국에 20여 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미용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늘면서 수염 전문 왁싱도 시작했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턱 부위 서비스의 경우, 직접 면도하는 것에 비해 깨끗하고 칼날에 베이거나 뾰루지가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남성 전문 제품·장소 잘 이용하는 법
화장품 민감성 피부는 유통기한 짧고 순한 무알콜·무파라벤·무색소 제품 추천. 건성 피부는 유분이 부족해 주름이 생길 수 있어 유분기 있는 제품 선택.

헤어 탈모에는 계면활성제가 없어 자극이 적은 제품 사용.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어 모발을 튼튼하게 해주는 액체형 두피 마사지 제품 추천.

전자제품 매장에서 체험해 본 뒤 구매하는 것이 A/S나 고장 수리를 맡길 때 유리. 가격에 민감한 경우 매장에서 보고 인터넷으로 최저가 상품 찾아 구입.

카메라 제품 고가품이 많은 카메라 관련 제품 한 곳에 VIP로 등록해 놓고 구매하면 신제품 출시나 행사 등이 있을 때 서비스받기 쉬움.

왁싱 서비스 처음엔 어색할 수 있어 남성 왁서가 있는 곳 선택. 팔·다리 털이나 수염을 없애는 경우 5~6회 이상 서비스 받으면 털이 연해져 관리 편해.

글=강태우·윤혜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정한, 장석준, 각 업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