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장독대인데도 된장 냄새는 하나도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지씨가 장독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한 장독대를 열자 전통 된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달리 은은한 짠 내가 풍겼다. 고씨 부부가 ‘된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자체 개발한 벌꿀효소 된장이다. “장을 담글 때 대추를 벌꿀에 발효시킨 효소와 함께 각종 한약재를 넣었어요. 일반 된장에 비해 냄새를 80%까지 잡았고 짠맛도 덜한 편이죠.(지씨)”
된장 대중화 나선 고상흠씨 부부
절에서 맛본 장맛에 반해 본격 공부
“한국 된장, 일본 미소보다 맛 뛰어나”
고씨는 “전국의 사찰에 다니다 보니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장을 맛볼 수 있었고, 자연스레 전통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씨도 “외국 호텔에 가면 일본의 미소 된장국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더 훌륭한 맛을 내는 한국의 전통 된장은 우리 젊은 세대들조차 찾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0년 특허 등록까지 마치며 본격적으로 된장 사업에 나선 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2012년 7월이었다. 한 업체와 계약을 하러 가는 길에 4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씨는 당시 사고의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겪으면서 사고 이전의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2년간 병원 신세를 지며 힘들어하던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남편의 힘이 컸다. 고씨는 “병원에서 외출할 때마다 이곳 장독대 앞에 앉혀놓고 일하는 모습을 보게 하면서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사고 전 기록해 둔 메모를 토대로 장 담그는 방법 등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조금씩 예전의 삶을 되찾았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