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는 매우 흔한 바이러스다. 여성 10명 중 8명은 평생 한 번 이상 감염된다. 다만 암으로 이어지는 건 이 가운데 1명뿐이다. 나머지는 증상 없이 지나가거나 자연적으로 치료된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유형에 따라 성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HPV의 유형은 150여 가지에 이른다. 위험한 건 20개 내외에 불과하다. 발견된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붙이는데, 가장 위험한 건 16형이다. 전체 자궁경부암의 53.5%가 16형에 의해 발생한다. 이어 18형(17.2%), 45형(6.7%), 31형(2.9%), 33형(2.6%), 52형(2.3%), 58형(2.2%), 35형(1.4%) 순이다. 자궁경부암 외에도 질암·외음부암·항문암의 원인이 된다.
한국인 잘 감염되는 52·58형 포함
기존 백신에 5~7개 유형 추가
자궁경부암 발생 위험 크게 낮춰
그런데 얼마 전 예방 범위를 70%에서 90%로 늘린 백신이 나왔다. 기존 4개 유형(6·11·16·18)에 5개 유형(31·33·45·52·58)이 추가된 ‘9가 백신’이다. 예전이라면 예방접종을 해도 10명 중 3명은 자궁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있었으나 이제 10명 중 9명이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한 백신에 담긴 바이러스 항체를 4개에서 9개로 늘리는 건 쉽지 않다. 예방 범위가 넓어진 만큼 ‘깊이(유형별 예방 효과)’가 얕아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전 세계 여성 1만421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시험에선 이런 우려가 해소됐다. 새로 추가된 5개 유형에 대한 예방 효과는 97.4%로 기존 4개 유형의 예방 효과(96.9~100%)와 큰 차이가 없었다.
9가 백신은 우리나라에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흔히 감염되는 HPV 유형이 전 세계 평균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 18~79세 여성 6만775명을 분석한 결과 34.2%가 HPV에 감염돼 있었고, 16형(25.6%), 52형(25.2%), 58형(11.5%) 순이었다.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인 18형(7.5%)은 네 번째였다. 겉모습이 다른 만큼 같은 바이러스라도 지역별로 걸리는 유형이 서로 다른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이신화 교수는 “한국에서 잘 걸리는 HPV 유형은 북미나 유럽과는 다르다”며 “국내에서 31·33·45·52·58형은 HPV 관련 암 발생 위험을 15%, 자궁경부암 전 단계 발생 위험을 45%까지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미 백신을 접종한 사람도 9가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추가로 9가 백신을 맞으면 기존의 백신 효과에 더해 더 큰 면역효과가 있다고 보고됐다. 다만 추가 접종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결정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영탁 교수는 “기존 백신은 70%, 9가는 90%까지 예방한다”며 “추가 20%를 위해 비용을 투자할지 말지는 개인 여건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의학적으로는 기존에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굳이 9가 백신을 추가로 접종할 필요는 없지만 만약 추가 접종을 원한다면 기존 백신을 맞은 지 최소 1년 이후에 맞는 게 좋다”고 했다.
현재 2가 백신과 4가 백신은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항목에 추가돼 있어 만 12세 여아라면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 새로 출시된 9가 백신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9가 백신이 새롭게 추가될지 여부는 내년 말께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백신은 2회 접종으로 충분하지만 9가 백신은 3회 접종으로 허가된 상태다. 9가 백신 역시 2회 접종으로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충분히 마련돼야 비로소 무료 접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9가 백신 개발사인 MSD의 김진오 이사는 “유럽과 미국에선 이미 2회 접종 승인을 받았다”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도 허가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