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40년사를 되짚어보면 똑같은 위기가 있었다. 1978년 2차 오일쇼크 당시에서 세계 해운업계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특히 한진해운이 주력인 태평양항로에서 해상 물동량이 무려 40%나 감소했다.
한진해운 굴곡의 40년사
조중훈 회장은 한진그룹 경영조정실에 독촉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다 이내 전화기를 내려놨다. 해운 물동량 감소와 운임 하락으로 한진해운이 자본잠식 상황인데다, 선박·장비를 구입하느라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상승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 없어서 경영보고서를 못 올린 게 불 보듯 뻔했다.
보고를 들으며 조 회장은 낭비되는 비용이 많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컨테이너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컨테이너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위기에서는 조중훈 회장 같은 의사결정권자가 없었다. 조수호 당시 한진해운 회장이 지병으로 작고하자, 부인인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2007년 나섰다.
구체적 배경은 이렇다. IMF 위기 당시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은 국내 53개 대규모기업집단에 부채비율을 일괄적으로 200% 이하로 조정하라고 명령했다. 수백억원 이상 자금이 소요되는 선박을 해운사가 자기자본으로 구입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때문에 해운사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대출받아 선박을 구입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일괄적으로 해운업에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했고, 해운사는 알짜 자산을 죄다 팔아치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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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이 선박과 자산을 내다 팔고 난 이후 해운 업황이 개선됐다. 급증한 물동량을 실어 나르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가의 대여료(용선료)를 주고 배를 빌려야 했다. 선박 용선은 통상 15년~20년 장기계약인 경우가 많은데, 당시 고가의 용선료가 지금도 한진해운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운업에 반짝 호황이 찾아오자 한진해운은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2009년 총 69척이던 한진해운 선박은 2013년 상반기 104척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선박을 빌린다거나 투자하기 위해 대출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155%였던 한진해운 부채비율은 2013년 1445%까지 증가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당기순손실만 8238억원을 기록하며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이 기간에도 한진해운은 대규모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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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 회복을 목 빠지게 기다렸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중국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까지 침체했다. 부채를 당겨 투자하는 ‘불난 집’에 해운 시황은 다시 침체하며 ‘부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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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은영 회장은 유동성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2014년 시숙인 조양회 한진그룹 회장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넘겼다. 조양호 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조 회장은 알짜 자산이었던 에쓰오일 지분 28.4%(3198만주)를 전량 매각하는 등 한진해운 회생에 조 단위 자금을 쏟아 부었다. 2014년과 2015년 영업이익이 소폭(240억원~369억원) 흑자를 기록, 회생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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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오일쇼크라는 더 큰 파도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회사”라며 “쉽진 않겠지만 법정관리 파고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