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에 들어온 박씨는 딸을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도강(渡江) 비용’까지 간신히 마련했지만 몇 년간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탈북 브로커를 찾지 못해서였다.
북에서 온 그들 특별한 추석
대구 박명심씨와 열두살 은별이
부산 깡통야시장 이광·한선희 부부
박씨는 어린 나이에 빙두까지 먹어본 딸 걱정이 많다. 혹시 마음의 상처가 깊게 남았을까 싶어서다. 한국 정착 후 박씨는 톨게이트 요금징수원으로 일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 종업원 일을 시작한 것도 일하면서 딸을 곁에 두기 위해서였다. 은별이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은별이는 벌써 한국 연예인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었다. 이번 학기부터는 초등학교도 다니기 시작했다. 박씨는 딸과의 재회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탈북한 뒤 남은 가족들은 ‘탈북 집안’으로 낙인 찍혀 고초를 겪었다. 몰래 돈을 보내도 금세 마을에 소문이 나서 이내 보안원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박씨는 “동생이 몇 번 붙잡혀 가서 조사도 받고, 벌금도 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딸을 내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지금 일하는 가게에서 일을 배워 분식점을 차리는 게 목표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 밤 10시가 돼서야 가게 한편에서 딸과 저녁을 먹으며 박씨는 은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이번 추석은 박씨에겐 10년 만에 만난 은별이와 함께 보내는 첫 명절이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명절이 제일 외로웠다는 박씨는 이번엔 딸이 좋아하는 북한 음식인 두부밥을 만들어 먹을 계획이다.
부산의 명물인 중구의 부평 깡통 야시장. 매일 저녁 “두부밥 사세요”라는 젊은 부부의 목소리가 퍼진다. 목소리 주인공은 탈북자 부부인 이광(28)·한선희(31·여)씨. 탈북 후 중국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올해 초 한국에 입국해 부산에 정착한 뒤 결혼까지 했다.
아내의 이름을 따서 만든 ‘통일써니’ 매대에는 세 가지 맛의 두부밥과 오징어순대 등 북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 정부 지정 탈북자 지원센터인 동아대 부산하나센터의 지원으로 지난 7월에 첫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파리만 날렸다. 북한에서 30년간 당 간부를 지낸 부모 덕에 가정부까지 두고 지냈다는 한씨는 “처지가 바뀐 게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탈북 이유에 대해선 상세한 설명을 피했다. 가난한 축구선수였다는 남편은 그런 한씨 얘기를 들으며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슬며시 웃었다. 손님들도 손님이지만 주변 상인들을 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장사에 숨통이 트였다. “시장 생활은 주변 상인들과 잘 지내는 게 먼저”라는 한씨의 영민함 덕분인지 주변 상인들이 젊은 탈북자 부부에게 마음을 열었다. 부부는 주변 상인들의 조언을 하나 둘 모아 메뉴의 구성과 맛을 개선했다. 이제는 두 개에 3000원인 두부밥과 한 개에 3500원인 오징어순대가 하루에 30만원어치씩 팔린다. 다음 달엔 부산 시내에서 ‘푸드트럭’도 개시하려고 한다. 돈을 모아 부산에 북한 음식을 파는 큰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다.
부부는 명절에도 쉬지 않고 야시장에서 가게를 연다. 재료인 오징어와 야채 등을 사기 위해 부평시장을 돌아다니던 이씨가 떡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씨는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명절에 모여 내 얘기를 할 텐데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랑 딱 10년만 고생하자고 했다. 나중에 잘 돼서 꼭 식구들도 데려와 함께 살 것”이라며 다시 부인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구·부산=서재준 기자 suh.jaej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