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가 지금 소비 문화의 중심이다보니 여기 저기서 이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정작 ‘특징이 없다’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하나의 틀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소소한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런 수수께끼 같은 밀레니얼 세대라도 분명 어떤 기호를 갖고 있고 어떤 트렌드를 선택해서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우선 패션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글로벌 패션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바잘리아의 발언은 묘하게도 대한민국 밀레니얼의 마음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의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초반 젊은이들은 때론 본격적인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담과 좌절부터 배우기도 한다. 성장이 급속도로 더뎌진 사회에서 젊은 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래 극히 제한적이다. 꿈조차 사치가 되어버렸으니 이 세대가 바라는 것은 당연히 지극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절약부터 하고 봤던 그들의 조부모 세대와도 또 전혀 다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스몰 럭셔리)로 스스로를 만족시킨다면 얼마든지 주머니를 털 용기와 소신이 있는 인류들이다. 때론 십만원이 넘는 향초, 그리고 조말론런던이나 딥티크, 불리1803 등 흔하지 않아서 ‘니치 향수’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이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뷰티 브랜드 중엔 투쿨포스쿨(Too Cool For School)이라는 브랜드가 딱 그렇다. 아시아는 물론 북미와 남미, 유럽까지 K뷰티가 거친 항해를 리드하고 있는 요즘 가장 강한 개성을 발하고 있는 브랜드다. 전 세계 뷰티 멀티숍 중 최고인 세포라는 물론 파리의 패션 성지로 불리우는 콜레트 스토어, 그리고 최근에는 웬만한 럭셔리 브랜드도 입성하기 까다롭다는 파리 시내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까지 입점했다.
최근 유투브 조회수 200만을 넘긴 마스카라(트위스티테일 마스카라) 광고 하나만 봐도 투쿨포스쿨이 얼마나 대담하게 틀을 깨는 전략을 쓰는지 알 수 있다. 여학생에서 무당까지 각종 부류(?)의 여성들이 어떡하든 마스카라를 잘 발라보려고 사투를 벌인다. 배경 음악으로 장사익의 ‘이게 아닌데’가 흐른다. 보고 있는 동안 그야말로 ‘이게 뭔가’ 싶다. 기존 뷰티 브랜드의 마스카라 광고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비주얼이다. 그러나 여기에 밀레니얼들은 열광한다.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날 것의 느낌을 당당하게 거짓없이 보여주는 태도, 그게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톤앤매너’다.
딱 이렇게 접근한 방송 드라마도 있었다. JTBC의 ‘청춘시대’다. 제목 만큼은 밀레니얼 세대적 감각이 떨어지지만 12부작 모든 에피소드마다 요즘 20대 젊은이의 고민과 갈등과 사랑과 미움과 현실을 과장이나 포장없이 소소하고 고스란히 담아 전달했다.
모바일에서의 콘텐트 소비 트렌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다. 자고 일어나면 몇 개씩 생기는 SNS 기반의 모바일 매체들은 10대와 20대들이 좋아할 만한 현실적이게 ‘병맛’인 콘텐트를 쏟아내고 있다. 72초 드라마, 딩고 등이 이미 주목할 만한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늦었지만 주요 방송사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신생 매체 하나는 JTBC 장성규 아나운서가 과감하게 1인미디어 BJ로 변신한 ‘짱티비씨’다. 앵커로 가는 버젓한(?) 길목에서 기성 세대가 아직까지 과소평가하는 ‘온라인 매체’를, 그것도 1인 미디어 형식으로 제작해보겠다고 나선 용기가 대단하다. 최근 디지털 콘텐트의 트렌드를 스마트하게 포착하여 코믹하면서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톤앤매너로 접근하는 짱티비씨 채널은, 앞으로 보도성 뉴스 콘텐트를 어떻게 밀레니얼 세대 입맛에 맞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름 기대를 걸게 한다.
저성장시대에 태어나 이제 소비 문화의 중심에 선 밀레니얼. 그들은 LTE 속도를 타고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을 물처럼 마시며 성장해왔다.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로 문화와 콘텐트를 소비하고 어떤 이유로 구매 의사를 확정짓는지부터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꾸미지 않은 정면승부적 현실감각과 ‘있어보여야 하는’ 비주얼 감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밀레니얼 세대 마음을 사로잡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ELLE 편집담당 강주연
※ 이번 8월 10일을 시작으로 격주 수요일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강남인류(江南人流)'가 옵니다.
평소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시 형식으로 정리한『이성복 시론』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시'와 '시인'이라고 쓰여진 자리에 '기사'와 '기자'를 대신 써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성복 시인은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상정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뭐 다르겠어요. "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
시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시론(詩論)에 대해 늘어놓는 건 10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처음 선보일 중앙일보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江南人流(강남인류)를 만든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소속 기자들의 마음가짐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언론환경을 탓하거나, 거꾸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신문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고루한 접근을 하는 대신 오로지 독자가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제호 江南人流에서 江南(강남)은 지역적 의미를 넘어 차별화한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 썼습니다. 결국 江南人流란 남다른 취향과 눈높이를 가진 사람들(人)을 위해 일류(一流)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담은 신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10일부터 기존의 江南通新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발행하는 江南人流,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