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예수도 바리새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던 ‘율법들’을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은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을 향한 예수의 깊은 연민과 ‘사랑의 법’ 앞에서 재해석되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보았을 때)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안식일에 귀신 들린 자, 손 마른 자,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거리낌 없이 치료했고, 이런 행위들로 인해 기득권자들에게 원수가 되었다.
돈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한 임대 아파트 주민
포장된 명분보다 환대가 숭고한 인간을 만들어
어떤 임대 아파트는 주민들의 모금운동으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어떤 아파트는 경비실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공동전기료의 부담을 해결했다. 심지어 개인이 사비를 털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한 사례도 있다. 반면 어느 아파트는 전기료를 이유로 아파트 정문 경비실에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의 리모컨을 빼앗아 버렸다는 보도도 있다. 어떤 아파트에서는 이미 설치한 에어컨을 절차가 잘못되었다며 뜯어내 많은 사람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왜 이런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절차 운운하지만 사실 선행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명분은 돈이거나 아직도 남아 있는 봉건적 신분 의식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일 푼도 나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타자를 자신처럼 귀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굳이 반대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때로 감성이 아니라 의지다. 좋아서 하는 일이면 누군들 못 하겠는가. 게다가 21세기의 현대에는 먼 고대의 안티고네처럼 사랑의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지 않아도 된다. 뜻이 있다면 절차 안에서 혹은 절차를 뛰어넘거나 바꾸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좋은 뜻이 길을 만들며 절차가 장애물이 아닌 열린 통로가 되기도 한다. 청년수당 문제를 비롯한 많은 논제도 마찬가지다. 포장된 명분보다 환대를 택하는 것이 숭고한 인간을 만든다. 그리하여 조건 없는 ‘환대의 법’이 의무와 명령에 토대한 다른 ‘법들’보다 중요하다(자크 데리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