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코비치는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수주 뒤 법원이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한 야당 빅토르 유셴코의 손을 들어주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른바 ‘오렌지 혁명’이다. 이를 계기로 야누코비치는 유권자 동향 파악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미국 전문가를 찾았고, 당시 매나포트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나포트는 우크라이나 최고 부호이자 지역당의 핵심 후견인 중 리나트 아크메토프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가 오갔다고 보도했다.
국경 넘나드는 정치 컨설턴트
2003년 영화인 ‘보리스 만들기(Spinning Boris)’도 유사한 소재를 다뤘다. 96년 재선 전망이 암울하던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조지 고튼 등 일군의 미국인 정치 컨설턴트를 기용해 전세를 역전했다는 내용이다. 실제 이들 미국인이 대선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되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을 담은 『알파독』의 저자인 제임스 하딩은 “소여 밀러가 여론조사·메시지·이미지 등 TV정치학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면 후세대인 칼 로브(공화당 선거전략가)나 딕 모리스(빌 클린턴 재선 공신)는 세분화, 그에 따른 맞춤형 메시지, 직접 소통, 개인 접촉 등의 데이터베이스 정치학을 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들어선 후발국 컨설턴트들이 세계를 공략했다. 경영계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여기엔 언어적인 요인도 있다.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어를 하는 컨설턴트가 해당 언어를 쓰는 권역에서 활동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다. 제도적 요인도 있을 수 있는데, 프랑스인들이 한때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하곤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산타나가 미국 컨설턴트들을 대체했다”며 “브라질식 처방은 끔찍한 사람이 선출된다는 데 별 신경 쓰지 않고 이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다. 산타나 스스로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심리분석가들이 죄의식 없이 성관계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유권자들이 후회 없이 정치를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일이 있다.
높이 날던 그도 근래엔 추락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그 역시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노동자당 후보를 위한 정치 마케팅 비용인 3000만 헤알(약 94억원)을 한 기업체로부터 받은 게 문제가 됐다.
크로스비는 이후 눈을 호주 밖으로 돌려 2005년부터 영국 보수당을 도왔다. 2015년 보수당의 예상 밖 승리엔 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는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뉴질랜드·스리랑카에서도 활약했다. 보수당 캠프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책사인 짐 메시나도 일했다. 그는 최근엔 11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를 돕고 있다. 에드 밀리밴드가 이끈 노동당에서도 역시 오바마의 책사인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활동했었다.
한국 안팎의 정치 컨설팅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들이 기존 선대본부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며 “선거엔 각국이 공통인 부분과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들은 공통인 부분, 즉 유권자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분석을 담당하곤 한다”고 전했다. 이어 “따라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로컬 파트너가 이들에게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S BOX] DJ의 노란 상징색, 대선 재출마 ‘소여 밀러’가 모두 도와
한국에서도 외국의 정치 컨설턴트들이 활약했을까.
『알파독』엔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인사가 접촉했다는 기술이 나온다. 1986년 ‘소여 밀러’가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은 코라손 아키노를 도와 마르코스의 21년 장기 집권을 끝낸 직후,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코라손 아키노가 있다. 그분이 노란색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직원이 그해 8월 서울로 날아가 DJ를 만났다.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도 소여 밀러는 그의 재기를 예상하고 도왔다고 한다.
앞서 ‘소여 밀러’의 워싱턴 파트너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로 이름 높았던 에드 롤리스가 87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얘기도 있다. 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엔 별다른 얘기는 없다. 한 선거 전문가는 “외국 컨설턴트들에게 한국은 매력 시장이 아니다. 선거법으로 너무 많이 묶어두어 법으로 할 수 있는 것 말곤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포함해서다. 그러나 비공식 루트는 열려 있을 수 있다. 유력자들이 사적으로 컨설턴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순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뭐든 가능하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도 외국의 정치 컨설턴트들이 활약했을까.
『알파독』엔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인사가 접촉했다는 기술이 나온다. 1986년 ‘소여 밀러’가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은 코라손 아키노를 도와 마르코스의 21년 장기 집권을 끝낸 직후,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코라손 아키노가 있다. 그분이 노란색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직원이 그해 8월 서울로 날아가 DJ를 만났다.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도 소여 밀러는 그의 재기를 예상하고 도왔다고 한다.
앞서 ‘소여 밀러’의 워싱턴 파트너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로 이름 높았던 에드 롤리스가 87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얘기도 있다. 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엔 별다른 얘기는 없다. 한 선거 전문가는 “외국 컨설턴트들에게 한국은 매력 시장이 아니다. 선거법으로 너무 많이 묶어두어 법으로 할 수 있는 것 말곤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포함해서다. 그러나 비공식 루트는 열려 있을 수 있다. 유력자들이 사적으로 컨설턴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순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뭐든 가능하니까 말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