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등 근육 살아 움직이는 강수진

중앙일보

입력 2016.08.27 00:18

수정 2016.08.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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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이 현역 발레리나로서 은퇴했다.

그의 마지막 무대를 외신 사진으로 접했다.

1400여 관객이 ‘DANKE SUE JIN’이라 적힌 흰 종이를 들고


‘발레리나 강수진’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만으로도 그의 지나온 삶이 읽혀졌다.

그 순간 강 감독의 등 근육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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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난 게 2014년 6월이었다.

사실 강 감독을 만나기 두어 달 전 그의 등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젊은 발레리노 사진 촬영을 위해 들른 연습실에서였다.

단원들 앞에서 춤 동작을 시연하는 강 감독의 등 근육을 우연히 보게 됐다.

먼발치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등 근육이 확연히 보였다.

우리 나이 쉰을 목전에 둔 발레리나,

게다가 예술감독을 겸하면서도 유지한 등 근육이었다.

그 등 근육이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날 이미 작정해 두었다.

언젠가 강 감독을 만나면 반드시 등을 찍겠노라고….


인터뷰 후 강 감독이 여러 의상을 보여주며 내게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은 당연히 등이 제대로 보이는 의상이었다.

그리고 강 감독에게 등 근육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강 감독 또한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주문을 내게 했다.

“이것저것 다른 사진 요구하지 말고 딱 한 가지로만 승부하시죠.”

여지없이 딱 부러지는 어투였다.

실제로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음을 미리 전해들은 터다.

더구나 ‘하루가 24시간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을 정도였다.


실제 강 감독의 스케줄은 이랬다.

매일 오전 5시부터 출근 전까지 개인 연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원들 춤 지도와 발레단 행정업무,

오후 6시부터 밤 10∼11시까지 또 개인 연습이었다.

인터뷰와 촬영 시간을 정확히 정해놓은 터였다.

그러니 이것저것 찍느라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단 한 가지로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였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포즈를 취하자마자 등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격렬한 움직임 없이도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지간히 단련해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날의 등 근육,

이는 강수진 스스로의 역사일 뿐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