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
이기동 옮김, 프리뷰
712쪽, 2만9000원
미국 사람들은 세상의 나머지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상황을 ‘구조적’으로 잘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적어도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건국이래 쭉 해오고 있다. 독재·독재자·독재정권은 미국인들에게 낯설다. 미국 헌정사에 독재자는 없었다. 한 가정의 독재적인 아버지는 몰라도 독재적인 대통령을 체험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의 나머지에는 예나 지금이나 독재 정권이 많다.
7년여 모스크바 근무 NYT 기자
막강권력 러시아 대통령 심층해부
한반도 둘러싼 4대 강국 지도자
그를 알아야 통일 전략에도 도움
푸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도 시시콜콜할 정도로 상세한 전기로 인정 받고 있는 『뉴 차르-블라디미르 푸틴 평전』의 제목에서 사용된 ‘차르’ 또한 독재자에 대한 일종의 완곡어법일 수 있다. 책 제목을 ‘새 독재자-블라디미르 푸틴 평전’이라고 했다면 분노한 러시아 사람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웠을 지도 모른다.
사실 러시아만큼 민주주의에 신경을 쓰는 나라도 많지 않다. 푸틴은 2008~2012년 굳이 대통령 자리를 잠시 메드베데프에게 물려주기까지 했다. 개헌을 통해 스스로를 종신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경제가 극단적으로 추락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다. 푸틴은 솔직하다. 그는 외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뒤떨어졌기 때문에 당신네들 나라에서와 달리 민주주의에 적응할 수가 없다. 러시아인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뉴 차르』의 저자인 스티븐 리 마이어스는 7여년간 모스크바에서 근무한 뉴욕타임스 기자다. 따라서 이 책 내용이 러시아의 대통령에 대해 미국 시각으로 채색됐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1917년 발발한 러시아혁명과 함께 사라진 차르가 100년이 흐른 다음 지금의 러시아에 부활한 것일까. 저자는 푸틴의 어린 시절,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시절, 모스크바 시절을 거치며 러시아 애국주의의 화신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소련이 ‘굴욕적으로’ 붕괴하는 현장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2류 강대국 처지가 된 것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옐친 대통령의 측근을 넘어 후계자 자리까지 꿰찬 푸틴은 러시아의 재부상과 소련 시대와 같은 영향권(sphere of influence) 확보를 위해 언론을 통제했고, 정적들과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를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디지털 세상에도 재갈을 물렸다.
미국 독자들은 러시아가 미국에 대한 중대 위협이기 때문에 이 책을 볼 것이다. 푸틴이 미국에 주는 당혹감을 덜기 위해 푸틴의 전기를 읽는다. 클린턴이건 트럼프건 차기 미국 대통령도 푸틴을 상대해야 한다. 냉전은 끝났지만 러시아는 나토(NATO)가 방어하려는 영토와 영공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독자는? 러시아는 미국·중국·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4대 강국이다. 언젠가 이룩될 남북 통일에도 러시아의 ‘축복’과 도움이 필요하다. 저자의 예상에 따르면 푸틴은 2024년까지 러시아 최고 지도자다.
[S BOX] 뒤통수 치지 않는 의리남
성실·근면하면 누구나 소부(小富)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대부(大富)는 하늘이 내는 것 같다. 누구나 노력하면 감투를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최고지도자는 역시 하늘이 점지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참전 용사 출신의 노동자였던 대통령의 경우에도 그렇다. 푸틴은 원래 그리 주목 받지 못하는 평범한 KGB요원이었다. 한 등급 아래라 서독이 아니라 동독에 배치됐다. 푸틴이 소련 시절 저평가된 이유는 그가 리스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련 관료사회는 위험·모험 따위를 싫어했다. 운 좋게도 세상이 바뀌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1999년 대통령 권좌에까지 오른 이유는 푸틴이 항상 적기(適期)에 적소(適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와 신뢰는 난세 최고의 가치다. 푸틴은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다. 의리가 있다. 한번 뭔가 결정하면 물불 안 가리고 집중하는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
성실·근면하면 누구나 소부(小富)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대부(大富)는 하늘이 내는 것 같다. 누구나 노력하면 감투를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최고지도자는 역시 하늘이 점지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참전 용사 출신의 노동자였던 대통령의 경우에도 그렇다. 푸틴은 원래 그리 주목 받지 못하는 평범한 KGB요원이었다. 한 등급 아래라 서독이 아니라 동독에 배치됐다. 푸틴이 소련 시절 저평가된 이유는 그가 리스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련 관료사회는 위험·모험 따위를 싫어했다. 운 좋게도 세상이 바뀌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1999년 대통령 권좌에까지 오른 이유는 푸틴이 항상 적기(適期)에 적소(適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와 신뢰는 난세 최고의 가치다. 푸틴은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다. 의리가 있다. 한번 뭔가 결정하면 물불 안 가리고 집중하는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