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민간 외교의 꽃, ‘스포츠 한류’

중앙일보

입력 2016.08.22 18:29

수정 2016.08.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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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감동의 순간은 계속됐다. 여자육상 5000m에서 뒤엉켜 넘어진 뉴질랜드와 미국 선수가 서로 격려하며 완주하는 모습, 체조 선수인 17세의 한국 이은주가 열 살 많은 북한 홍은정과 웃으며 셀카를 찍는 광경 등이 그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뇌리에 남는 건 배드민턴 여자복식에서 일본 다카·마쓰조(組)가 우승하자마자 한국 출신 박주봉 감독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배드민턴계의 전설’인 박 감독은 한국식 스파르타 훈련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선수 13명 중 12명이 첫 경기에서 질 정도로 약체였던 일본 배드민턴을 환골탈태시켰다. 박 감독의 일본 제자들은 준결승전에서 한국을 꺾었지만 아무도 그를 욕하지 않았다. “그게 국위 선양”이라는 칭찬 일색이다. 박 감독을 보는 일본 측 시선도 살갑다. 위안부 갈등에 따른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한·일 간 반감을 누그러뜨린 호재였다. 이런 게 바로 민간 외교의 힘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18명의 한국 감독이 16개국에서 활약했다. 이 중에는 외국 제자들을 독하게 굴려 성공한 이도 많다. 우선 베트남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박충건 사격팀 감독이 있다. 그는 공기권총에서 우승한 호앙쑤언빈을 인천 사격장까지 데려와 조련했다. 중국에 남자 유도 동메달을 선사한 정훈 감독은 독했다. 혹독한 훈련에 선수 30명이 야반도주해 정 감독이 잡으러 다녔다. 태권도와 양궁에서 태국과 미국에 은메달을 안긴 최영석·이기식 감독도 그 나라에선 영웅이다.


일본과는 위안부, 중국과는 사드 문제로 껄끄럽다. 베트남과 한국은 베트남전 때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다. 이런 터라 이들 나라에서의 우리 감독들의 성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켰을 것이다.

스포츠에는 미움을 녹이는 힘이 있다. 1995년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 단 1명을 빼고는 전원 백인만으로 구성된 이 나라 럭비팀은 흑인들의 전폭적인 응원 속에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다. 흑백 갈등 해소에 큰 몫을 한 건 물론이다. 79년 성사된 미·중 국교 정상화도 양국 탁구선수 간 우정에서 비롯됐다.

차제에 ‘스포츠 지도자 한류’가 더 번성하도록 온 사회가 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도 국적을 떠나 모든 해외 지도자들에게 마음을 여는 건 어떨까. 일본·중국 감독이 한국의 유도·다이빙 대표팀을 담금질해 이들이 금메달을 따지 말란 법도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