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그 교수들도 자기만의 뭔가를 찾아간다. 그래서 연구보다 후학 양성이나 교육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교수들이 일반적으로 늘어 간다. 이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일부 교수는 교내외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학회나 교내 보직을 통해, 때로는 정치·행정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여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는 나쁠 이유도 좋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런 어떠한 활동에서도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든 교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이런 교수에게 가장 편한 선택은 그냥 학교에서 학생들(특히 자신의 대학원생들)만 상대하며 사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위해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장 편하고 만만해서 그렇다. 학교 내에서 교수의 지위는 영원한 갑이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교수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사회규범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를 따르게 한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그런다. 그러니 을인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따르고 교수가 항상 옳다고 떠받든다(최소한 겉으로는). 슬프게도 대부분의 교수는 학교 밖 어디에서도, 심지어 자기 집에서도 이만한 대우를 받기 힘들다. 그러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에 이만큼 달콤한 유혹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최근 일련의 정부 인사를 보면서 이런 슬픈 교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모든 정치리더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지향점을 공유하는 사람을 써야 한다. 이게 측근 정치나 코드 인사로 비난받아도, 그래야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고 아끼는 측근과 부하 직원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 쉽게 버리면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약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리더가 측근과 부하 직원에게 의존하게 된다. 어디 가도 자신을 그만큼 지지해 주고 존경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최소한 겉으로는). 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은 항상 자신이 옳고 그만큼 행복하다. 물론 리더는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고 절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보호해 주고 아껴 주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교수들이 자신은 그러기 싫은데 학생들이 하도 원해서 그런다고 착각하듯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된 논란의 실체적 진실이 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 내용이 도덕적인 문제인지 법적인 문제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우 수석 입장에선 나름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헷갈린다. 누가 누구에게 더 의존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알려진 우 수석의 능력이나 재산을 보면 지금 그만둬도 앞으로 잘 살아갈 것 같다. 별로 그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바로 그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누구한테 그리 중요한 것일까. 리더는 절대 나쁜 갑질은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리더가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리더는 수많은 부하 직원을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그게 갑다운 갑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